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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영의 골프장 인문학] 노준택의 베어크리크 춘천

기사입력 2021. 08. 0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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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홀 앞에서 포즈를 취한 노준택 로가이앤지 대표.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개장한 지 오래지 않았지만 골퍼들 사이에 입소문이 오르내리는 골프장이 강원도 춘천에 있는 베어크리크 춘천(파72 7206야드)이다.

2019년 9월27일 개장해 만 2년을 앞둔 베어크리크 춘천은 18홀 퍼블릭이다. 최고급 양 잔디인 벤트그라스가 그린 뿐만 아니라 페어웨이까지 모두 심어졌고 러프는 캔터키블루그라스다. 설계가는 경기도 포천의 베어크리크 포천의 크리크 코스를 성공적으로 리노베이션한 노준택 로가이엔지 대표다.

골프장 오너는 노 대표가 크리크 코스를 업그레이드 시킨 점에 반해 자매 코스 설계를 맡긴 듯하다. 그는 영종도의 암반지대에 앉혀진 스카이72 하늘 코스를 시작으로 크리크 코스를 리노베이션 했고, 경기도 이천의 27홀 고급 퍼블릭 마이다스이천 등의 고품격 퍼블릭 코스들을 연달아 내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회원제 코스 중에 경기도 이천의 27홀 프라이빗 회원제 웰링턴도 설계했다. 이 코스는 원래 코스 설계가 레이먼드 헌과 송호 씨가 18홀을 완료했으나 오너의 취향과는 안 맞았던 까닭에 노 대표가 피닉스와 그리핀 코스 리노베이션을 맡았다. 뒤이어 2015년 가을에는 와일드하면서 가장 챌린징하다는 와이번 코스 9개 홀을 처음부터 만들었다. 그 결과 웰링턴의 그리핀-와이번 코스는 <골프다이제스트>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베스트 코스에 두 번 연속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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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벤트그라스의 베어크리크 춘천은 페어웨이와 러프의 색대조가 뚜렷하고 선형 관리가 뛰어나다.


베스트 코스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노준택 대표는 뛰어난 코스가 가져야 할 요소로 ‘홀 캐릭터’를 중시한다. 베어크리크 크리크 코스를 리노베이션 할 때 홀 마다의 기억성을 대폭 높였다. 투그린을 원그린으로, 잔디 초총도 바꾼 건 기본이고 홀의 외형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예컨대 9번 홀은 티잉 구역에서 그린까지 긴 개울을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개울(creek)이름을 붙인 코스에 개울이 없었으나 그는 베어크리크의 정체성을 살렸다. 어떤 홀에는 비치벙커는 키워서 홀을 특색있게 만들었고, 군데군데 억새를 심어 차별화를 달성했다.

베어크리크 춘천은 어떤 컨셉트였을까? 부지 면적은 넓지 않다. 18홀 골프장에 통상 30만평을 잡지만 이곳은 총 92만5505㎡으로 28만평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절대로 좁아보이지 않는 데서 설계가의 숨은 기량이 발휘된다.

오르막인 1번 홀(파4 블랙티 기준 360미터)부터 거침없이 광활하다. 웬만한 코스라면 주변에 나무를 빽빽하게 심었겠으나 시작하는 홀에 시원한 느낌을 극대화했다. 군데군데 제주도산 팽나무만 심어져 있다.

내리막인 2번(파4 400미터) 홀 티잉 구역에 서면 벤트그라스 페어웨이와 캔터키 잔디인 러프의 색 대조가 뚜렷하다. 노 대표의 설명이다. “벤트그라스 잔디라서 가능했지요. 페어웨이와 러프의 공간 분할을 확실히하고 잔디 예고(刈高)를 구분하면 선형이 뚜렷해집니다. 많은 오너들은 긴 러프를 좀처럼 허용하지 않습니다. 공을 못 찾거나 언덕에서 안 내려오면 진행 시간이 더 걸린다는 이유죠. 하지만 이곳은 코스 선형 관리가 철저합니다. 티타임 간격도 9분이라서 진행을 재촉하지 않고 충분히 여유 있는 라운드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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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티잉 구역과 마주한 7번 그린은 가운데 숲을 남겨두어서 가깝지만 실제로 전혀 멀리있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차폐 효과를 극대화 했다.


3번 홀은 전장 315미터로 드라이버블(Drivable) 파4 홀이다. 장타자는 원온에 도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확하지 않으면 개울로 공이 들어갈 수 있으니 단타자는 페어웨이를 겨냥해야 한다. 골퍼에게 공략 선택권을 넘긴다. 길이는 짧아도 흥미를 준다. 그린 앞으로 구제 공간(bail out area)을 조성한 점도 국내 코스에서 좀처럼 보기 드물다.

노 대표는 다양한 샷 옵션이 홀 전략성을 높인다고 설명한다. “3번 뿐만 아니라 7번 홀도 그린 옆으로 구제 공간이 있습니다. 웰링턴을 리노베이션 할 때 조회장님이 ‘한국 골퍼 70% 이상이 90대 타수를 치는데 그들도 즐겁게 라운드해야 좋은 코스 아니냐’그러시더군요. 핵심적인 지적이셨죠. 이후 중하수 골퍼들도 전략을 짜고 코스 매니지먼트를 고민하게 홀을 조성합니다.” 그린에 못미쳐도 웨지로 띄우거나 퍼터로 굴려서 핀에 붙일 수도 있다. 클럽을 다양하게 잡도록 하는 것은 설계가의 역량이다.

내리막으로 호쾌하게 티샷하는 6번(파4 390미터) 홀을 지나면 7번(파4 380미터) 홀은 오르막이다. 그런데 6번 티잉구역과 7번 그린이 가깝지만 그 사이를 숲이 차지해 독립성을 높인다. 대체로 좁은 공간에 조성하는 골프장은 왕복하는 홀 레이아웃이 많다. 이곳 역시 그런 구성이 보이지만 이웃한 홀로 느껴지지 않는 건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을 현명하게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6번 홀 그린 앞으로 호수를 만들거나 그린 옆으로 숲을 남겨서 차폐(遮蔽) 기능을 극대화했다. 눈썰미 있는 골퍼라야만 두 홀이 서로 마주본다는 걸 알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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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 홀은 티잉 구역에서 벙커를 넘길지 페어웨이로 잘라 갈지 고민하게 만든다.


9번(파5 508미터) 홀은 전반에 가장 재미있고 도전적인 홀이다. 티샷부터 전략을 짜도록 한다. 페어웨이 앞에 여러 벙커들에 주문진 규사를 깔아 흰색 모래와 녹색 잔디의 색 대조가 뚜렷하다. 티샷으로 과감하게 벙커를 넘기면 투온의 기회가 열리고, 안전하게 페어웨이로 보내겠다면 세 번에 가는 전략을 짜야 한다. 한 샷 한 샷의 가치도 그만큼 높다.

파5 12번 홀은 블랙티에서의 전장이 560미터이고 레드티에서는 417미터다. 거리 차이만 143미터다. 운영 편의상 백티는 만들어놓고 쓰지 않도록 하는 곳도 많지만 이곳은 5개의 티잉 구역을 모두 다 열어 둔다. 블랙 티에서의 코스레이팅은 74.7이고, 화이트는 70.5, 레드티는 70.3이 나온다. 슬로프레이팅은 124~139까지 변차가 골고루 분포된다.

“이 골프장은 백티 사용률이 유독 높습니다. 그만큼 실력자 골퍼들이 많이 찾는다는 거죠. 실력대에 맞춰 티잉 구역을 선택할 수 있게 하라는 게 오너의 주문이었습니다. 5개의 티잉 구역마다 난이도를 다르게 조성하는 게 설계할 때의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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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 홀은 이웃한 12번 홀 사이에 엄청난 웨이스트벙커 구역을 만들어 독립성을 높이고 페어웨이 가운데 미루나무도 심어 홀의 입체성도 살렸다.


마주보는 이웃 홀을 골퍼가 알아채지 못하고 독립적으로 느끼도록 하는 노하우는 12, 13번 홀에서 재연된다. 양 홀 사이로 페어웨이 벙커가 150미터 이상 넓게 깔려있다. 흰 모래가 바다처럼 펼쳐진다. 샷을 하고 고무래로 자국을 정리해주고 떠나야 하는 일반 벙커가 아니라 웨이스트(waste)벙커다. 시각적으로는 자연스레 홀을 구분해주고 기능적으로는 옆 홀로 공이 갈 수 없게 만드는 현명한 장치다.

벙커 사이에 서너 그루 미루나무를 세운 데에는 설계가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 “페어웨이 벙커가 너무 쉬우면 핸디캡 기능을 상실하죠. 게다가 입체적인 공간을 만들려고 미루나무를 심었습니다. 판판한 모래 면과 수직을 이룰 수 있는 대표적인 수종이 미루나무거든요.” 사소하지만 미세한 고민들이 베스트 코스의 평가 기준인 ‘심미성’을 높이는 장치다.

14번(파3 165미터) 홀은 자연 언덕 계곡을 하나도 손대지 않은 듯 그대로 두고 그린만 만들었다. 그린 오른쪽에 심어진 활엽수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코스 맞은 편에 멀리 채석장을 안보이도록 의도했다. 설계가는 골프장 안에서는 인공 건축물을 최대한 감추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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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번 홀의 크리크는 17번에서부터 흘러내려와 티잉 구역까지 이어진다. 베어크리크임을 증명하는 요소다.


16번(파5490미터)홀은 이 코스가 왜 베어 크리크인지를 웅변하는 홀이다. 포천 베어크리크처럼 17번 홀에서 흘러내려오는 개울이 티잉 구역까지 내려온다. 따라서 페어웨이 왼쪽은 자연히 피해야 하는 구조다. 오르막 홀이지만 작은 개울에서 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광경은 자연 속에서 골프한다는 행복감을 준다.

내리막이지만 꽤 긴 파3를 지나 라운드를 마무리하는 18번 홀(파4 425미터)은 멀리 남이섬과 춘천의 야트막한 산자락들의 실루엣이 겹겹이 펼쳐진다. 라운드를 마치자마자 복기해보면 1번부터 18번 홀까지의 특징이 잘 그려진다. 홀 마다의 개성을 달리 부여해 기억성 높은 코스를 만들었다. 좋은 코스가 가져야할 중요한 자질이다.

클럽하우스는 클럽나인브릿지에 참여했던 국내 설계업체가 초빙되어 단정하지만 심플하게 조성했다. 전면 투명 유리로 햇살이 들어오고 외부 테라스에서 출입하기 쉽다. 레스토랑의 식사 공간은 충분히 넓다. 팬데믹 시대의 거리 두기를 실현한 듯 여유롭다. 코스로 들어가는 입구에 그린스피드를 기재하는 점도 바람직한 운영 정책이다.

퍼블릭 코스 중에 이 정도 코스와 시설과 서비스라면 접대를 위한 회원제 코스의 만족감을 훌쩍 능가한다. 최근 개장한 신설 코스 중에 발군이자 '노준택'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할 만하다. 국내 설계가의 치밀한 고민과 상상력이면 해외 어느 설계가와 견주어도 경쟁력이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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