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의 대성과 승리, 소녀시대의 태연과 제시카, 슈퍼주니어의 희철과 강인.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면 유노윤호와 시아준수에서 옥주현과 바다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아이돌을 빼놓고 얘기가 안 되는 것은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뿐이 아니다. 뮤지컬에도 아이돌 스타의 진입이 잇따르며 티켓 파워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뮤지컬 제작사엔 흥행을 보장하고, 아이돌에겐 실력을 뽐낼 ‘기회의 땅’으로 떠오른 뮤지컬 무대 뒤편을 들여다본다.
▶뮤지컬돌의 탄생 이유:
아이돌엔 기회의 땅…제작사엔 흥행보장 안전장치
SES 출신 바다는 뮤지컬 ‘페퍼민트’로 일찌감치 뮤지컬 무대에 발을 내디뎠다. 옥주현이 ‘아이다’ 오디션에 직접 찾아가 평가를 받을 때만 해도 아이돌의 뮤지컬 무대 도전은 ‘특별한 일’이었다. 하지만 뒤를 이어 손호영, 박정민, 시아준수 등이 잇따라 뮤지컬에 출연하며 ‘가능한 일’이 됐다.
슈퍼주니어의 예성과 성민은 각각 ‘남한산성’과 ‘아킬라’를 통해 뮤지컬 데뷔 무대를 갖고 ‘홍길동’엔 함께 출연했다. 빅뱅의 승리와 대성은 ‘소나기’와 ‘캣츠’로 뮤지컬에 데뷔했고 ‘샤우팅’에 함께 캐스팅되며 가수를 꿈꾸는 10대를 연기했다. SS501의 박정민은 뮤지컬 출연의 오랜 꿈을 ‘그리스’ 대니 역으로 발탁되며 풀었고, 김형준은 소극장 뮤지컬 ‘카페인’으로 작은 무대부터 시작했다. 소녀시대 제시카가 ‘금발이 너무해’에 출연한 이후 태연은 ‘태양의 노래’에 캐스팅되며 노래 실력을 뽐냈다. 샤이니의 온유는 ‘형제는 용감했다’로 가능성을 보였고, ‘락 오브 에이지’에선 안재욱과 더블캐스팅됐다.
이 같은 뮤지컬돌의 탄생과 활약은 뮤지컬계의 수요와 아이돌의 필요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90년대 급속히 성장한 뮤지컬 시장은 2000년대 중반 들어서는 주춤거렸다. 한꺼번에 많은 작품이 쏟아져나왔고 경기불황이 겹치면서 대작 위주의 쏠림 현상이 심했다. 불안한 시장에서 수많은 팬을 거느린 아이돌의 존재는 초반 흥행을 보장하는 안전장치가 됐다.
이에 일상적인 공연관람 문화가 확대되기보다는 마니아 층이 더욱 견고하게 다져졌다. 아이돌 스타들의 뮤지컬 출연은 20, 30대 중심의 한정된 뮤지컬 관객층의 연령을 아래로 넓혔다.
실제 인터파크의 공연 티켓판매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구매자의 비중은 10%로 2008년 5%, 2009년 7%에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주 관객층인 20, 30대 비중은 여전히 높아 76%에 이르렀지만 지난해에 비해서는 2%가량 떨어졌다.
아이돌의 입장에서도 뮤지컬 무대는 새로운 도전의 땅이다. 아이돌 그룹의 수적 증가뿐 아니라 같은 그룹 내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 경쟁 상황에서 가창력과 연기 모두에서 실력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공연계 한 관계자는 “가창력을 인정받고 연기도 배울 수 있어 뮤지컬 출연을 브라운관으로 들어가기 전 단계로 여기는 아이돌 스타들도 있다”며 “활동에 공백이 있었던 아이돌의 경우, 뮤지컬을 통해 자신의 인기를 가늠해보고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수요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면서 아예 음반기획사와 뮤지컬제작사가 손을 잡고 ‘뮤지컬돌 키우기’에 나서기도 한다. 최근 ‘지킬앤하이드’ 제작사인 오디뮤지컬컴퍼니와 ‘카라’ 등을 키운 DSP미디어가 뮤지컬 아이돌 그룹을 선발하고 육성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달 오디션을 통해 4월부터 뮤지컬 ‘그리스’ 공연에 참여시키고 가수로 데뷔할 최종 선발 인원을 뽑는 것이다. 오디뮤지컬컴퍼니 관계자는 “80여회의 공연 기간 관객들은 공연장 또는 온라인상에서 바로 투표를 통해 심사에 참여할 수 있다”며 “최종 선발된 이들은 음반을 내고 가수로 활동하면서 뮤지컬 무대에도 함께 설 것”이라고 말했다.
▶뮤지컬돌의 화려한 뒤편엔:
특별대우탓 불협화음 고충…일정탓 중도 하차도
아이돌 스타들이 뮤지컬 티켓 파워를 과시하며 공연 관객 연령대의 확장을 가져오고 있지만 뮤지컬돌의 증가가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매번 오디션을 거치며 ‘경쟁’해야 하는 기존 배우들에 비해 ‘발탁’으로 쉽게 무대에 설 기회를 얻으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다 보니 뮤지컬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 깊어졌다. 최소한 회당 300만원 이상인 아이돌의 출연료는 뮤지컬계에서는 특별 대우. 이는 아이돌들이 털어놓는 ‘텃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유인나는 수년 전 뮤지컬 배우에 대한 꿈을 품었지만 왕따를 당했다는 경험을 고백해 화제를 모았다. ‘카페인’에 출연 중인 김형준도 “이전에도 몇 번의 제의가 있었지만 기존 뮤지컬 배우들과 어울릴 자신이 없어서 쉽게 뮤지컬 출연을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불협화음은 배우들 간의 호흡이 중요한 뮤지컬에서 작품의 완성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이돌의 영역이 확장되는 가운데, 충분한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공연에 투입되거나 빡빡한 연예계 활동 때문에 연습시간도 제대로 갖지 못하기도 한다. 이는 오디션부터 수개월간의 연습, 리허설과 공연까지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하는 공연 무대와 맞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5월 ‘태양의 노래’에 출연할 당시 태연은 소녀시대 2집 활동뿐 아니라 라디오도 진행하면서 뮤지컬을 준비했다. ‘금발이 너무해’에 출연한 제시카의 경우 주인공 엘 우즈의 이미지엔 가장 맞는 캐스팅으로 꼽혔지만 연습 부족과 피곤한 모습을 지적받기도 했다.
작품보다는 이슈 생산으로 저울질하며 출연 결정을 번복하는 일도 있었다. ‘코러스라인’으로 뮤지컬에 데뷔할 예정이던 그룹 ‘애프터스쿨’의 정아는 스케줄과 연습량 부족 등을 이유로 개막 전에 하차했고, ‘유키스’의 수현 역시 이 작품에 한 번 오른 뒤 일정 문제로 빠졌다.
가요무대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에 공연계까지 넘나들고 있는 아이돌이 진정한 뮤지컬돌로 인정받기 위해 넘어야 할 것은 결국 무대에 대한 애착과 그를 증명할 수 있는 실력인 것이다.
뮤지컬 기본은 노래
바다·옥주현·온유…
그룹 리드보컬 ‘접수’
아이돌 스타들이 드라마, 영화 뿐 아니라 뮤지컬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다. 이들의 활약은 뮤지컬 시장을 움직이고 있지만 시간과 상황의 한계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
뮤지컬돌의 기본은 노래 실력이다. 가수를 뮤지컬 무대에 들이는 것은 일단 가창력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실제 뮤지컬에 도전하는 아이돌의 대부분이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 리드보컬을 맡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1세대 아이돌이라 불리는 SES의 바다와 핑클의 옥주현이 대표적이다. 이 두 배우는 대형 라이선스 공연에 크리에이티브 팀이 참여하는 오디션에 당당히 지원해 발탁되며 가창력과 연기를 인정받았다.
바다는 2003년 ‘페퍼민트’를 시작으로, 예명 대신 최성희라는 배우로서 본명을 알렸고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 때는 오디션을 치르고 여주인공 배역을 따냈다. 옥주현 역시 2005년 ‘아이다’ 초연 때 오디션을 본 후 아이다 역을 맡았다.
이 밖에 시아준수와 샤이니의 온유, 슈퍼주니어의 예성도 이름 있는 그룹의 보컬파트답게 역량을 인정받았다. ‘금발이 너무해’로 바다, 김지우와 함께 엘 우즈 역으로 뮤지컬에 첫발을 내딛는 루나 역시 f(x)의 리드보컬이다.
노래 실력을 앞세워 뮤지컬 무대에 발을 들여놓은 아이돌들은 연습과 공연을 거듭하며 연기력을 높여가기도 한다. ‘스팸어랏’에 출연한 슈퍼주니어의 예성은 “연기수업을 100시간 받는 것보다 선배 배우분들과 뮤지컬 연습하는 1시간이 더 낫다”며 무대의 매력을 설명했다.
윤정현 기자/ hi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