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듯한 사람.’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이끌었던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비단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차갑고 날카로운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협상테이블에서 그가 얻어낸 성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가 한ㆍ미 FTA 등 협상에 얽힌 이야기와 그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 교훈을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홍성사)에 담아냈다.
통상교섭본부장과 2008년 유엔대사를 그만두고 기록용으로 쓴 이 책은 통상정책이라야 다자간 협상이 전부이던 때, 국가 통상정책의 대전환을 이룬 한국 FTA 전 과정의 복기다. 한편으로는 FTA의 ‘F’자도 모른다며 빈정거림의 대상에서 FTA 강국으로 거듭난 성공스토리이기도 하다.
FTA는 김 본부장에겐 100년 전 개방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한 조선의 역사를 반복해선 안되는 결정적 대사(大事)로 여겨진다.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하려는 그의 전략은 외벽때리기였다.
큰 경제권과의 협상을 체결하기에 앞서 동쪽으로는 캐나다와 먼저 FTA를 출범시키고, 서쪽으로는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않은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 높은 수준의 FTA를 체결해 각각 미국과 EU를 불편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또한 남쪽으로는 아세안과의 교두보 확보 차원에서 싱가포르와,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미리 공동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중국·일본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자는 것이었다. 초기엔 변방 국가만 두드린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상당부분 주효했다.
무엇보다 국익이란 푯대 하나만을 기준삼아 소신있게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신선하다. 패를 쥐고 당당하게 상대방을 떠보고 주무르는 데선 통쾌감마저 준다. 특히 EU와의 FTA를 지렛대 삼아 미국을 초조하게 만들며 예비 협상테이블로 끌어낸 이야기, 반덤핑 비합산조치를 카드로 삼은 벼랑끝 전술, 일본이 우리나라에 배정한 240만속의 김 수출 쿼터를 WTO 제소라는 강수를 두면서 1200만속까지 끌어올린 뚝심의 협상과정은 드라마틱하다.
한때 들불처럼 번진 한ㆍ미 FTA 반대론자의 주장, 독소조항으로 불리는 투자협정에 대한 근거없는 주장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논리적 해명을 붙였다.
그가 4년여간 좌충우돌하며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할 수 있었던 데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 본부장은 에필로그에서 일면식도 없던 노 대통령이 그의 열정 하나만 보고 믿어줬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