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1호 박사이자 진보학자로 국내 학계에도 명성이 자자한 석학 거지엔슝 교수가 총편집을 맡고, 중국 역사학계의 권위자가 집필한 ‘천추흥망(千秋興亡ㆍ따뜻한손)’은 오늘의 중국을 읽는 키워드를 제공한다.
진(秦)왕조부터 청(淸)왕조까지 중국의 8대왕조를 각 권으로 구성한 이 역사서는 일반적인 통사와 달리 편년체를 탈피, 역사상 주요 왕조 혹은 시기별로 주요 사건이나 주제를 뽑아 집중적으로 서술하며 한 시대를 조망하는 식으로 구성됐다.
가령 당나라 유일무이한 여황제 무측천에 대한 그동안 비난 일변도에서 벗어나 봉건사회 속에서 황위에 오른 용기를 높이 평가한 점은 색다르다. 남존여비 사상을 뛰어넘어 여성에게 용기를 주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또 종래 무측천의 성적 취향이나 방탕함이 주로 부각됐다면, 저자는 인재등용과 번영의 기틀인 사회경제 제도 마련에 높은 점수를 준다.
양귀비에 빠진 당현종에 대해서도 다른 평가를 내린다. “만약 정사만 게을리했다면 피해는 크지 않았겠지만 만년의 현종은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공을 세우는 데 열을 올렸다”며 특히 대외관계에서 여러 차례 무력을 동원해 정의를 벗어난 전쟁을 벌인 게 화근이었다고 기술했다.
명나라 정화의 서양 대원정은 중국이 가장 자찬하는 역사적 사실 가운데 하나다. 선진 항해술을 토대로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약 30년 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진행된 원정으로, 1487년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한 것보다 70년이 앞선다. 중국 역사상 미증유의 위대한 탐험이었지만 지나치게 국고를 탕진하고 이후 항해기록을 모두 불태운 점은 유럽인의 신항로 개척과 대비되는 결과라는 평가다.
청나라 건륭제의 총애를 받은, 부패의 화신으로 불리는 화신은 뇌물로 받은게 당시 청왕조의 10년간 재정 수입과 맞먹을 정도로 뇌물수수의 지존이었다.
청말 중국의 근대화 과정의 사상적 변혁운동, 긴 혁명의 과정 등 격변기도 치우침 없이 기술하며, 저자는 건륭 이후 청대의 쇄국정책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견지한다. 이는 대외무역과 외교의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ㆍ경제ㆍ문화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세계와 단절, 모든 외세에 대한 맹목적 배척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역사서는 신해혁명을 이끈 손문으로 마무리한다. “염제신농씨와 황제헌원씨의 자손이라면 어느 누구든 (손문을)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이라는 기술에는 중화사상의 그림자가 비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