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억7000여만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재판은 쟁점이 핵심 증인인 한만호(50) 전 한신건영 대표의 ‘입’에서 ‘물증’으로 옮겨지면서 ‘대반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17일 열릴 5차 공판은 핵심 증인인 한신건영 경리부장이 나와 한 전 총리에게 전달된 자금의 내역과 장부 기록과정 등을 진술할 예정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이제까지 진행된 4번의 재판을 보면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고 검찰에서 말했다가 법정에서 번복한 한 전 대표 진술의 신빙성을 놓고 검찰과 변호인이 날선 공방을 벌였다.
한 전 대표가 2차 공판에서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진술은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을 바꾸면서 수세에 몰렸던 검찰은 3차 공판에서 한 전 대표가 교도소ㆍ구치소에서 모친과 면회하면서 나눈 대화가 녹음된 육성 CD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사본 등 그의 ‘위증’을 입증할 증거를 제시하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이어 4차 공판에서는 한 전 총리 대신에 돈을 줬다고 지목된 당사자들이 일제히 한 전 대표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선데다 한 전 총리가 한 전 대표의 사업에 도움을 주려고 했다는 정황도 새롭게 공개되면서 판세가 다시 검찰 쪽으로 기울었다는 게 대부분 법조계 인사들의 시각이다.
검찰은 한 전 대표와 주변 관계자들에게서 위증과 위증교사 혐의가 드러나면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검찰은 한 전 대표의 법정 진술이 여타 증인의 증언과 일치하지 않고 회사의 비밀 장부, 채권회수목록 내용 등과도 어긋나는데다 진술을 번복한 과정도 상식적이지 않은 만큼 검찰에서 60여차례 조사를 받을 때 일관되게 말한 내용이 객관적인 ‘진실’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변호인단은 공판중심주의에 따라 한 전 대표의 법정 진술이 수사 당시에 작성한 신문조서보다 더 믿을 수 있다면서 검찰에서 이뤄진 진술에 신빙성을 부여하기 힘들다고 주장하고 있다.
뇌물이나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서는 공여자의 진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법원은 진술의 일관성과 합리성, 객관적 증거 등을 토대로 공여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한다.
이번처럼 진술이 번복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증뢰자의 진술이 전후에 있어서 일치하지 않고 별건 수사에서 이득을 얻기 위한 허위진술의 가능성 등이 존재하나 일정부분 금융거래의 자료와 뇌물 수수의 정황이 일치하는 경우에는 그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권도경 기자@kongaa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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