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중학생 정모(13)군은 서울 지하철 5호선 강동역에서 갑작스레 경찰 오모(48)씨의 제지를 받았다.
오씨는 ‘NO117. 경찰청 광역수사대’라고 쓰여있는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며 “소매치기범을 수사하고 있다. 수사에 협조해달라”고 요구했다.
정군은 오씨와 함께 지하철역 인근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오씨는 “신분 확인을 해야하니 지갑을 보여달라”고 요구했고 정군은 아무런 의심없이 지갑을 건네줬다.
오씨는 신분증과 현금카드 등을 만지막 거리며 ‘네 이름이 ○○○맞느냐’ ‘이 카드가 진짜 네 카드냐’라며 캐물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오씨가 쏜살같이 커피숍을 빠져나갔다. 오씨는 현금 21만원이 들어있던 정군의 지갑을 든채 그대로 달아난 것이었다. 알고보니 오씨는 ‘가짜 경찰’. 그가 보여줬던 경찰 신분증도 모두 가짜였다.
위조한 경찰신분증을 보여주고 “소매치기 수사를 하고 있다”며 지갑을 건네 받은 후 그대로 훔쳐 달아난 ‘가짜 경찰’이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지하철경찰대는 19일 위조한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며 소매치기 수사를 핑계로 피해자들에게 지갑을 건네 받아 현금과 현금카드를 훔쳐 1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절취한 혐의(절도 및 공문서 위변조 등)로 오모(48ㆍ무직)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오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서울ㆍ경기 일대에서 총 5회에 걸쳐 104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오씨는 현금이외에도 피해자 지갑에 들어있는 현금카드를 훔쳐 현금을 인출하기도 했다.
경찰은 오씨가 피해자들에게 지갑을 건네 받은 후 신원 확인을 이유로 현금카드의 비밀번호를 직접 물어보는 등 대범함을 보였다고 밝혔다. 20대 건장한 남성들이 위조된 경찰신분증과 오씨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다. 오씨는 피해자들이 말해준 비밀번호로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빼낸 후 카드를 버리고 달아났던 것으로 경찰은 전했다.
오씨는 2007년에도 경찰을 사칭해 돈을 훔치는 등 비슷한 범죄로 징역 4년형을 받고 지난해 12월 5일 출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씨는 출소 후 대전에서 ‘경매낙찰’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고무도장을 구입해, 글자 ‘경’과 ‘찰’만을 칼로 오려내 신분증 크기의 용지에 파란 잉크를 묻혀 찍은 후 자신의 사진을 붙이고 ‘NO117, 경찰청 광역수사대’라고 써서 코팅하는 수법으로 경찰 신분증을 위조했다.
경찰조사에서 오씨는 “출소 이후 마땅한 직업도 없고 돈도 없어서 예전에 하던 범행을 다시 저지르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관인지 의심스러울 때는 소속과 이름을 꼭 확인해야 한다. 지갑이나 신용카드 등을 함부로 건네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박수진 기자@ssujin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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