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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뚱뚱한 소녀의 '미친 존재감'
미국서 겪은 한 가족의 반인권적 상황

북아메리카 지도 위에 10대 중반 소녀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 사진은 미국과 캐나다 국경을 배경으로 육지와 바다 중간에 위태롭게 걸쳐 있다. 미합중국 땅덩어리는 진한 갈색으로, 캐나다는 분홍 보라로 칠해져 있다.


살찐 둥근 얼굴에 약간 헝클어진 머리. 반디를 한 이마. 인도 전통 의상을 입은 소녀는 입을 굳게 다 문체 합장을 하고 있다. 그녀의 검은 눈은 화가 난 듯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아무 것도 묻지 마세요(마리나 부도스 저. 바람의 아이들)'의 표지.


무고한 사람들을 거대한 폭력 속으로 몰아넣었던 9.11 테러를 우리는 기억한다.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는 테러 이후,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서 고통 받는 불법 체류자 가족의 악몽 같은 한 때를 그렸다. 소설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니 오히려 굼뜨고, 존재감이 없는 소녀의 나디라의 입을 통해 미국에서 벌어진 반인권적 상황을 고발하고 있다.


책 제목이기도 한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는 나디라가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신상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해 온 대답이다. 부모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들 가족이 방글라데시인 불법 체류자이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인 다니라 가족은 8년 전 관광비자로 입국해 미국에 체류해 왔다. 당시에는 법이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아, 별 문제없이 살았다. 하지만 9.11 테러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민국은 불법 입국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반인권적인 법률이 속속 만들어졌다. 이슬람교도 사회는 잠재적인 범죄 집단으로 분류되었다. 특정국가 출신의 18세 이상 이슬람교도 남성들은 당국에 등록을 해야 했다. 이들은 불법 체류 사실이 발견되거나, 비자와 관련한 사소한 법률 위반으로 법적 절차 없이 투옥, 구금, 강제 출국 되었다.


만료된 여권으로 불안한 나디라 아빠는 캐나다로 망명을 시도한다. 하지만 실패하고 테러 관련 혐의로 감옥에 갇힌다. 두 자매는 아버지의 결백을 증명하려하지만 쉽지 않다. 일이 잘 풀리지 않자, 가족의 희망이었던 언니는 무력감에 빠진다. 이제 남은 건 뚱뚱하고 존재감이 없던 나디라 뿐. 느리긴 해도 끈기가 주특기인 그녀는 누구도 발견해 내지 못한 서류상의 오류를 찾아내고 판사 앞에서 그 사실을 얘기한다. 그것도 아주 멋지게.


이 소설은 9.11테러 이후, 미국의 반인권적 상황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동시에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작가는 말한다. 포기하지 말라고. 네 안에 지닌 가능성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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