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저축은행 대주주의 전횡 사실이 잇따라 폭로되고 있는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저축은행 대주주를 대상으로 ‘옥석 가리기’에 들어갔다. 저축은행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현행법 위반 여부를 가려 대주주로서 적격한지를 가리는 작업이다. 금융전문가들은 저축은행의 불법 대출과 분식회계, 저축은행 대주주의 배임ㆍ횡령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이 같은 조치가 궁극적으로 저축은행업계 전반의 지배구조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전망했다.
▶지분 10% 이상 대주주, 2% 이상 특수관계인이 대상=이번 조치는 저축은행법 개정을 계기로 오는 7월 처음 시행되는 저축은행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대비한 것이다. 심사 대상은 자산 규모 3000억원 이상인 67개 저축은행의 대주주 및 그 직계가족 300명 선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저축은행 지분율 10% 이상 대주주와 지분율 2% 이상의 대주주 직계 존비속 및 배우자의 법규 위반 여부 등을 살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만, 영업정지된 7개 저축은행의 매각이 이뤄질 수 있어 최종 심사 대상은 다소 유동적”이라며 “30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저축은행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난해 9월 이후 현재까지 해당 요건의 저축은행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위법행위와 형사처벌 전력을 살펴볼 예정이다. 위법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은 저축은행법과 은행법, 신용정보법, 자본시장법 등 모든 금융 관련 법률을 위반했는지에 달렸다. 금감원은 적격성 심사에서 탈락하면 6개월 이내 보완할 수 있도록 하고, 그래도 적격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대주주 자격을 빼앗고, 지분을 10% 미만으로 낮추도록 주식처분 명령을 내릴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우선 10개 저축은행의 대주주 30명을 무작위로 뽑아 ‘파일럿 테스트(pilot test)’를 벌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앞서 금감원은 심사 대상에 오른 대주주의 인적 사항, 법규 위반 여부, 계열사와 특수관계인 정보 등을 조사해 전체 105개 저축은행의 대주주 475명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했다. 금감원은 대주주 DB를 활용, 적격성 심사 과정에서 이들이 특수관계인 등의 이름을 빌려 특수목적회사(SPC)를 세워 우회 대출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집중 점검할 예정이다.
▶주인 바뀌는 저축은행 속출할 듯=저축은행 대주주에 대한 이 같은 압박이 결국 저축은행 지배구조에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 영업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이어서 대주주 스스로 경영권을 포기하는 곳도 속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증자 방안 등을 강구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주주들이 이번에는 당국으로부터 자질 심사(?)까지 받게 돼 충격이 작지 않다”며 “스스로 경영권을 포기하는 대주주들도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무구조가 비교적 양호한 저축은행이면서 대주주가 사생활 공개에 민감한 저축은행의 경우 인수ㆍ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특히 KB금융, 우리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등 4대 금융지주회사가 저축은행 인수에 적극 뛰어든 만큼 M&A 시장이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은 물론 신용대출마저 부실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져 매각 협상에 돌입하더라도 타결될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예금보험공사가 보유 중인 가교저축은행들의 매각도 계속 무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영업 규제 강화, 부동산 경기 침체,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등으로 경영 압박이 심화되고 있어 재무구조가 좋든 나쁘든 모두 위기를 맞고 있다”며 “정부가 과거 부실을 이유로 채찍만 할 게 아니라 당근을 줘 갱생을 도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재섭ㆍ박정민 기자/i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