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무료급식소가 더 북적댄 까닭
밥에 김치만 싸들고 나와공원구석서 혼자 아침때워
지나는 사람들 구경하다가
점심은 무료급식소서 해결
가슴엔 카네이션만 쓸쓸히
지난 5일 오전 서울 종묘광장공원. 황모(77ㆍ서울 마장동) 할아버지는 공원 한구석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흰 쌀밥에 반찬이라고는 신 김치가 전부. 아내와 사별한 이후 홀로 살고 있는 황 할아버지는 매일 직접 도시락을 싸들고 오전 10시께 종묘광장공원을 찾는다.
노인 우대권을 이용해 지하철을 타고 공원에 도착하면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오후 4시까지 공원 주변을 걷거나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이 전부다. 자식들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어린이날 만난 황 할아버지는 손자 손녀와 나들이를 나온 동년배 노부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평소에는 괜찮은데 5월처럼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 가정행사가 많은 날은 좀 외로워. 부러워도 별 수 있나. 그냥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황 할아버지의 얼굴엔 외로움이 가득했다.
8일 오후 서울 탑골공원에서 만난 김모(70ㆍ서울 도봉동) 할아버지는 가족 모임을 피해 일부러 공원을 찾았다. 아내와 아들 내외, 손자 2명과 함께 살고 있지만 김 할아버지는 어린이날에 이어 어버이날에도 공원에 나와 시간을 보냈다. 그는 “누가 노인네를 반가워 하겠나. 내가 집에 있으면 짐밖에 안 된다. 차라리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의 왼쪽 가슴에는 공원 정문 앞에서 자원봉사단체가 나눠준 카네이션이 쓸쓸히 달려있었다.
가족 간의 사랑을 더욱 돈독히 하는 가정의 달 5월. 하지만 노인들은 5월이 더 외롭다. 지난 5일 어린이날과 8일 어버이날에 서울 종묘광장공원, 탑골공원, 보라매공원, 무료급식소 등에서 만난 노인들은 한목소리로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 “걸음 느린 노인네가 나들이 따라나서면 괜히 민폐”라며 고개를 저었다.
가정의달 5월, 하지만 노인은 더욱 외롭다. 어버이날인 8일 서울 종묘광장공원, 탑골공원 등 노인이 주로 모이는 곳에서는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노인이 무료급식이나 허름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공원 벤치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지난 8일 종묘광장공원과 인근 무료급식소에는 노인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매일 평균 2500여명의 노인들이 방문하는 종묘광장공원은 어버이날에도 예외는 없었다. 김진수(57) 종묘광장관리사무소 단속팀장은 “평일 휴일 상관없이 하루 평균 2500명 이상의 노인들이 공원을 찾는다. 5월이라고 해서 방문객 수가 줄거나 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3가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에는 이날 181명의 노인이 찾아와 점심식사를 해결했다. 어린이날이었던 5일에는 251명의 노인이 방문했다. 하루 평균 방문객 수보다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에 30~100여명 정도 많은 노인들이 다녀간 셈이다. 서재광(44) 사무장은 “경기도, 천안, 소요산 등에서 오시는 어르신들도 많다. 집에 있으면 며느리나 자식에게 눈치가 보인다며 이곳을 많이 찾으신다. 대부분 외로워서 오시는 분들이다. 오전 9시부터 식사를 기다리시는 분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사회의 단면을 인정하고 이에 걸맞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전광현 서울신학대 사회복지대학원장은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앞으로 노인 소외와 고독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라며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를 창조해 종묘 공원 등이 노인 문화의 메카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대근 기자/bigroo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