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도는 봄 배추가 결국 땅속으로 파묻히게 됐다. 몇 달전만해도 일선 농가의 조기출하를 위해 보조금이 지원되던 배추에 이제는 폐기를 위한 보조금이 지원된다.
지난 3일 서울시 농수산물공사에서는 ‘농·소·상·정’ 대표가 모여 유통협약식을 가졌다. 정부가 지난달 말 내놓은 봄배추, 양파 수급안정 대책에 따라, 최근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폭락한 배추의 수급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한국무배추생산자연합회와 전국농산물산지유통인중앙연합회는 정부 대책에 따라 내달 10일까지 봄배추 1만t을 산지에서 자율 감축하기로 했다.
‘산지 자율감축’이란 이름 그대로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일부 배추를 산지에서 생산하지 않고 갈아없는 것을 말한다. 정부는 ‘자율감축 작업비’ 명목으로 10a(300평)당 45만원을 지원키로 했다.
지난해만해도 부르는 게 값이었던 배추가, 반년새 돈을 들여 파묻어야 하는 처지가 된 셈이다.
지난 2월에만해도 배추농가들이 배추를 잘 키워 일주일만 조기 출하해도 필지당 7~8만원의 보조금이 지원됐었지만, 이제 딴 나라 이야기가 됐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봄배추 상품(上品) 1kg의 가격은 지난 6일 기준으로 310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가격에 비해서는 절반 이하 수준이고, 지난달 평균가격대비로도 78% 이상 하락했다. 이달들어서도 50원정도가 더 떨어졌다.
문제는 이렇게 산지에서 배추를 갈아엎어도 가격이 정상화 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생산 물량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배추파동에 혼쭐이 난 정부가 강력한 공급확대 정책을 내놓고, 산지 상인들의 봄배추 값에 대한 기대까지 더해지면서 배추 재배 면적이 크게 늘었고, 날씨까지 좋아 올해 봄 배추 생산량은 당초 예상치를 크게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해 노지 봄배추 재배면적은 7308ha로 지난해보다 20% 증가했다. 게다가 시설봄배추 재배 면적은 평년대비 50%나 늘었다. 이를 감안한 생산량 추정치는 63만톤으로 평년보다 20% 이상 많다. 물량으로는 12만톤 정도가 필요 이상으로 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산지 1만톤 폐기로는 남는 물량을 감당할 수 없다.
게다가 산지 자율 감축과 함께 정부가 내놓은 ‘김치 및 배추 수출추진 확대’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지난한해 우리나라가 수출한 전체 김치의 양이 3만톤임을 감안하면 6월까지 5000~6000톤 이상 김치 수출은 사실상 불가능 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때문에 일선 농가에서는 오히려 정부가 시장 격리 물량을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생산자 단체 한 관계자는 “봄 배추 재배 물량이 다소 많다는 지적이 2월부터 꾸준히 제기 됐음에도, 정부가 국민들 비난과 물가를 감안해 모자르는 것보다 남는게 낫다는 식의 정책을 편 셈”이라면서 “남는 생산량의 70% 정도는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격리시켜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승완 기자 @Redswanny> sw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