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그를 ‘따거((大哥)’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이제 그가 퇴장한다. 2년 3개월 만이다. 70년대 초 남덕우 전 부총리(4년 3개월) 이후 최장수다. 개발독재시절과 달리 개방과 위기를 반복해온 오늘날 한국경제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윤증현 장관의 재임기간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대표선수에게는 당연히 준엄한 판단과 평가가 따라다닌다. 대표적 경제관리로서 그의 공과에 대해서도 찬반이 명확하다.
그가 이끌어온 MB경제팀의 활동기는 집권 2년차부터 4년차까지 말 그대로 ‘한창’ 때다. MB노믹스를 실현하기 위한 MB정부의 대표적 경제관료였음에는 이견이 없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젊은 청와대 보좌진과 불협화음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과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몇 안되는 경제수장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참여정부 이후 경제정책 방향을 90도 선회하는 MB노믹스를 뿌리내리기 어려웠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2009~10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의 존재감은 빛났다. 따거 컨트롤타워의 일사분란한 지휘 속에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경제정책에 관한 한 그는 백조다. 늘 사람 좋은 웃음을 띠지만, 물속의 발은 쉴새없이 움직인다. 그의 밑에서 일하는 관료는 언제나 바쁘다.
윤 장관의 리더십은 G20 국제회의에서도 빛났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이해관계를 의장국으로서 조율해내는 데 그의 리더십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많은 논란 속에서도 그가 주도한 감세정책이 기업의 투자의욕과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음도 물론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성공의 이면에는 적지 않은 문제점도 잉태됐다.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풀렸던 과도한 유동성은 결국 물가불안과 과도한 가계부채라는 부메랑이 되어 날아왔다.
그는 물가불안과 서비스 선진화 정책을 마무리짓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이 크다. 또 내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재정건전성이 흔들릴까 우려한다. 최근 일련의 선거에서 패한 한나라당이 과도한 복지정책을 펼까 걱정이다.
훗날 그가 MB정부의 대표적 경제관료에 그칠지, 한국 경제 중흥의 디딤돌을 놓은 철학을 갖춘 경제관료로 평가받을지는 후임자에 달렸다. 차기 경제팀의 몫인 셈이다.
박지웅 기자/goahea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