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을 전공한 대졸자가 술집에서 맥주를 나르고 라틴학 전공자가 전화 응답 서비스를 하며 이탈리아어 전공자는 월마트에서 복도 청소를 하고 있다. 미국판 ‘88만원 세대’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고소득을 보장하던 대학졸업장이 취업난으로 쓸모없이 되면서 대졸자들이 비정규직이나 단순기술직 자리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기침체로 일자리 상황이 악화되면서 고학력자인 대졸자들의 취업난도 가중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9일(현지시각) 지난 2년간 대졸자 취업률이 급격히 하락하고 초임수준이 낮아졌으며, 신규 졸업자들의 일자리 절반 정도가 대졸 학위를 요구하고 있어 고등교육 가치에 대한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고 전했다.
럿거스 대학의 존 헬드리치 노동력개발센터(John J. Heldrich Center for Workforce Development)에 따르면 2009년과 2010년 4년제 대학 졸업자들의 초임 중위값(초임을 순서대로 배열했을 때의 가운데 연봉)은 2만7000달러로 2006∼2008년 취업한 대졸자들의 3만 달러보다 10% 떨어졌다. 비교 기간의 물가 상승률은 감안하지 않아 이를 고려하면 실질적인 차이는 더 벌어진다.
하지만 이런 통계에 들어간 대졸자들은 일자리를 얻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 한다. 2010년 졸업생 가운데 존 헬드리치 노동력개발센터의 조사가 이뤄진 이번 봄까지 최소한 1개의 일자리라도 확보한 비율은 56%였다. 2006년과 2007년 졸업생들의 90%에 비하면 엄청나게 떨어지는 수치다.
낮은 취업 비율도 악화한 일자리 상황을 제대로 나타내지는 못한다. 많은 졸업자가 자신의 기술을 사용할 수 없는 일자리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NYT는 최근 식품점, 주류 상점, 택시, 리무진 서비스 등에서 일하는 대졸자들이 과거와 비슷하거나 더 늘었다고 소개했다.
NYT는 이런 현상에 대해 대졸 학위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학력 수준이 낮은 노동자들의 일자리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밝혔다. 노스이스턴 대학의 앤드루 M. 섬 경제학 교수는 고졸자들이나 고등학교 중퇴자들의 실업률이 대졸자들보다 훨씬 높다면서 “학력 수준이 낮을수록 노동시장에서 배척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졸자들이 고졸자 등 학력이 낮은 구직자들의 일자리를 뺏고 있지만 애환도 있다. 고학력일수록 좋은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교육을 더 받고 싶지만 대학 시절의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해 일자리를 가릴 처지가 아니다. 2006~2010년 대졸자들의 학자금 대출 중위값은 2만 달러였다.
2009년 피츠버그 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 맥줏집과 서점에서 일한 카일 비숍(23)은 “이력서에 이런 저런 경력을 올리는 것이 장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대출을 갚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출판이나 저술 일을 하고 싶다는 비숍의 학자금 대출은 7만 달러가 넘는다.
경제적 이유로 학교로 돌아갈 수 없으면 대출금을 갚기 위해 저임금 일자리에서라도 일해야만 하고 이런 경력은 장래의 소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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