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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잖아요, 문제는 소통이에요”
‘한국 미술계 기둥’ 김승영 WALK展 ‘내일의 작가’ 최수앙展
영어로 어려움 겪은 김승영

버려진 스피커 바벨탑 형상화

삶과 죽음·흔적 이야기

최수앙의 사실적 인체상

시니컬한 감성·날선 시각

현실 적나라하게 드러내





미래 한국미술계 기둥으로 지목되는 두 명의 아티스트가 도심 미술관에서 나란히 초대전을 열고 있다. 미디어아트 작가 김승영(47)과 설치미술가 최수앙(36)이 그 주인공. 미술계 유행사조와는 아랑곳없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천착해온 두 작가의 묵직한 전시를 찾아가봤다.

▶‘천천히 걸으며 사유를’-김승영의 ‘WALK’전=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는 요즘 거대한 스피커타워가 설치됐다. 버려진 스피커 186개를 탑처럼 빈틈없이 쌓아올린 김승영의 역작 ‘타워’다. 모양도, 크기도 다른 스피커로 7m 높이의 소리탑을 쌓기 위해 김승영은 지난 3년간 스피커 500여개를 발로 뛰며 수집했다. ‘타워’ 속에 들어가면 새가 날갯짓하는 소리, 심장박동 소리, 바람소리 등 8개 채널에서 서로 다른 음향이 천천히 울려퍼져 관람객은 스르르 명상에 빠져들게 된다.

작가는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 전 세계 유망작가를 대상으로 한 뉴욕의 PS1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작가는 영어에 어려움을 겪으며 ‘언젠간 이 뼈저린 경험을 작업으로 담아보리라’ 결심했다. 귀국 후 그는 바벨탑을 떠올렸고, 스피커를 탑처럼 높게 쌓아올린 설치작업을 통해 이를 실현했다. ‘소통’이란 주제를 드라마틱하게 형상화한 셈.

그동안 물, 낙엽, 이끼 같은 자연물에 첨단미디어를 결합시켰던 김승영은 이번에도 낡은 의자, 폐허, 주위 평범한 이들의 이름 같은 ‘별 것 아닌 소재’에 주목하며 삶과 소통, 생명과 죽음, 꿈과 현실을 성찰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지하의 너른 전시장에 붉은색 철제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가져다놓은 작품이 그 예다. ‘웬 녹슨 의자람?’ 하고 의자에 다가가 앉아보니 따뜻하다. 차갑게 보였던 낡은 의자에서 온기를 느끼는 순간, 관객의 마음은 무장해제된다. 시장통 상인들이 혹독한 겨울 추위를 잊기 위해 군불을 때며 앉았던 의자는 휘황찬란해진 현대의 삶과 오버랩되며 시간의 궤적을 드러낸다.

또 온통 새파랗게 칠해진 둥근 방에선 맑은 뭉게구름이 나타났다 스러진다. 작가는 구름이 움직이는 소리를 채집해 스피커를 통해 들려준다.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 생성과 소멸이란 자연의 이치를 ‘영상시’처럼 보여주는 작업이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할 당시 만든 죽은 새와 이끼를 대비시킨 영상작업 또한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키워드는 소통과 흔적, 삶 같은 것들”이라며 “모두들 큰 것을 목표로 숨 가쁘게 뛰지만 나는 작고 소소한 걸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음향과 화면을 음미하게 하기 위해 미술관 측은 구두를 슬리퍼로 갈아신게 하고, 관람 인원도 제한하고 있다. 숨 막히는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작가가 들려주는 소리에 귀 기울여봄 직한 전시다. 6월 3일까지. 관람료 2000원. (02)736-4371

낡은 스피커 186개를 7m 높이로 쌓아올린 김승영의 설치작품‘ 타워’. 우물처럼 파인 중심에선 새소리, 심장박동 소리 등 8가지 음향이 동시에 흘러나와 소통의 부재를 상징하고 있다(사진 왼쪽). 똑같은 차림의 어린이 16명이 똑같은 노래를 부르는 최수앙의 작품 ‘Voices’. 다름을 허용치않는 세태를 비튼 작업이다.                                                       [사진제공=사비나, 성곡미술관]

▶‘나는 정상인가?’…‘내일의 작가’ 최수앙전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조각가 최수앙의 전시는 적잖이 불편하다. 그동안 사실적인 인체상을 통해 거대한 사회시스템 속 한낱 기계부품처럼 전락한 개인을 다뤘던 작업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 작가는 “드러내야 할 것을 감추거나 미화하는 사회에 대해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1층 전시장부터 충격적이다. 어깨가 완전히 굽은 나신의 ‘히어로’는 작가 아버지가 모델이다. 30여년간 경제발전을 대의로 공무원으로 봉직했던 부친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이 땅의 아버지들이 사회의 ‘영웅’인지 아니면 ‘희생양’인지 묻고 있다.

인간의 손들이 모여 날개 형상을 이룬 최수앙의 대표작 ‘날개’ 아래에선 남녀 어린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입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똑같은 복장에 똑같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를 은유한다.

의족을 찬 여인의 나신상 ‘퍼스펙티브’는 ‘관점’의 차이를 표현한 조각이다. 레진으로 만든 나신상의 오른발은 의족, 엄지발가락은 금으로 도금돼 있는데 과연 관객이 어느 부위에 먼저 눈길을 주는지를 탐색하고 있다. 애써 감추고 싶은 부분을 시니컬하게 묘파한 날선 시각이 범상치 않다. 6월 5일까지. 관람료 성인 3000원. (02)737-7650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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