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일본은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아시아의 세 나라(A3)다. 2009년 기준 한ㆍ중ㆍ일 3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0조8096억달러에 달한다.
세계 경제의 20%를 이 3개 나라가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급속도로 미국과 유럽의 영향력이 줄면서 한ㆍ중ㆍ일의 경제적 위상은 더 높아졌다. 이제 세계 경제는 이들 3개국의 부침(浮沈)에 따라 출렁인다.
하지만 외환시장으로만 넘어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 중국, 일본은 영원한 변방 자리에 벗어나지 못했다. 세계 외환시장의 기득권은 여전히 미국과 유럽이 쥐고 있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지금까지 일본 엔화가 달러화의 그늘 속에서 버텨왔지만 오래 가진 못할 것”면서 “중국의 위안화는 위력적이긴 하지만 국제적 신뢰를 쌓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상태라면 영국 파운드화나 일본 엔화가 걸은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ㆍ중ㆍ일 3국의 경제 규모가 커진 만큼 외환위기에 대한 대비 역시 중요해졌다. 3개 나라가 막대한 운영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한정 없이 둑(외환보유고)을 쌓는 이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ㆍ중ㆍ일 민관 연구기관이 힘을 합쳤다. 그 결실인 한ㆍ중ㆍ일 통화 협력을 위한 전문가 컨퍼런스 ‘A3 트라이앵글 이니셔티브’가 2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첫 선을 보였다.
‘A3 이니셔티브’ 창설에 참여한 정 이사장은 “달러화는 신뢰를 상실해가고 있고, 유럽의 유로화는 재정위기로 휘청거리고 있다”면서 “엔화도 망가지고 있으며, 결국 나중에 어떤 화폐도 (국제통화로서) 대안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렇다고 가만 있으면 우리나라 원화는 중국 통화신용정책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어가 한국 중앙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원화의 비애’를 막기 위해서라도 한ㆍ중ㆍ일을 단일 통화 바스켓으로 묶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A3 이니셔티브’ 소속의 15명 한ㆍ중ㆍ일 통화정책 전문가는 그 구체적 실행 방안을 담은 ‘정책 건의서’를 발표했다. 한ㆍ중ㆍ일 3개국의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A3 공동기금(ACF)’를 창설하자고 주창했다. 3개국 통화 스와프(맞교환)을 상시화ㆍ다자화해 역내 금융안전망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 한ㆍ중ㆍ일 공동 통화라 할 수 있는 ‘A3 바스켓 통화(ABC)’를 만들자는 내용도 정책 건의서에 담겼다. ‘A3 이니셔티브’는 ABC 표시 채권을 발행해 3개국 채권시장을 발전시키는 방안도 제시했다. 한ㆍ중ㆍ일 외화 공동기금(ACF)을 바탕으로 한 채권펀드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주장했다. 한ㆍ중ㆍ일 3개국을 아우르는 ▷역내 공동 채권신용보증기구 ▷공동 자본이동 감시시스템 ▷공동 신용평가기구 등 설립이 필요하다고 제언도 있었다.
다양한 주장이 ‘A3 이니셔티브’란 싱크탱크에서 쏟아져나왔다. 물론 한계는 있다. 민간 중심의 협의체에서 나온 제안인 만큼 실제 한ㆍ중ㆍ일 3국의 외환정책에 반영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3개국의 이해관계가 정치ㆍ경제적으로 워낙 얽혀있는 탓에 논란의 여지도 많다. 정 이사장은 “결국 돈의 질(quality)은 정책의 힘에서 나온다”면서 “민간에서 정부로, 정치권으로 논의를 진화시켜야한다”고 강조했다.
<조현숙 기자 @oreilleneu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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