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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수교는 왜 그렇게 만들었나?
너무 지겨웠어요. 장마가 마침내 끝났네요. 서울 하늘에 7월 7일부터 17일까지 연이어 비를 뿌려댔죠. 50년 만의 최장 연속 강우 기록이라고 하네요. 강수량 기록도 경신했다고 합니다. 물폭탄 규모가 평년의 3배가 넘었다네요.

올 장마에는 사람들이 유독 제게 관심을 보였답니다. 내가 한강물 속에 가라앉는지, 안 가라앉는지…. 그걸로 강수량을 체감하려 했다네요.

평소에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아무 문제 없이 내 위를 지나다니죠. 그런데 비만 오면 저는 한강물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마치 전설 속 도시 아틀란티스처럼. 그런 신비함 때문일까요. 사람들은 한강물 속을 넘나드는 내게 묘한 매력을 느끼는 듯해요. 제 소개를 합니다.

▶1976년 7월 15일 용띠… 한 달 만에 첫 잠수

정부는 1975년 9월 5일 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1976년 7월 15일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우리 식 나이로 따지자면, 올해 36살 용띠입니다. 저는 한강 북측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4번지에서 서초구 반포동 137번지 사이를 연결하죠. 



신체 사이즈요? 폭 14.5m, 길이 87.9m, 상하 ‘S라인’ 입니다. 공사비는 당시 돈으로 28억6000만원이 들었다네요. 나중에 지하차도가 추가로 만들어지면서 4억5000만원이 더 들었답니다.

제 이름은 왜 잠수교가 됐을까요. 잘 알다시피 비가 많이 와 한강 수위가 높아지면 물속에 가라앉기 때문이죠. 기존 한강다리는 수면 위 16~20m 위에 만들어졌지만, 저는 수면 위 2.7m에 놓여 있죠.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마치 물 위를 날아가는 스릴을 맛볼 수 있습니다.

저는 매년 이맘때면 10~20일 정도 잠수를 탑니다. 처음 잠수한 것은 1976년 8월 13일입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안 돼서죠. 당시 한강 유역에는 154㎜의 비가 왔고, 한강 수위는 6.5m였습니다.

처음에는 자동차만 다닐 수 있는 다리였습니다. 1978년 6월 28일, 폭 3m, 길이 35m짜리 지하보도가 만들어지면서 사람들이 걸어서 저를 즐길 수 있게 됐죠.

▶별명은 안보교, 유사시 긴급 복구 가능

저를 왜 물에 잠기게 만들었을까요. 정확하지 않지만 제 별명에 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제 별명은 안보교입니다. 한때 안보상의 이유로 지하터널로 구상돼 이 별명을 얻게 됐죠. 



한국전쟁 당시 제 아버지뻘인 한강인도교와 한강철교가 폭파됐죠.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었답니다. 당시 한강을 건너려던 피란민들 상당수가 다리 폭파로 희생되거나 다리를 건너지 못해 불운을 겪었다고 하네요.

이 같은 비운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당시 정부는 저를 잠수하는 다리로 구상했다고 합니다.

저는 교각의 폭이 15m에 불과합니다. 다른 다리에 비해 촘촘하죠.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랍니다. 위급 상황에서 폭파되더라도 교량 높이가 낮아 복구가 쉽기 때문입니다. 교량 높이는 한강시민공원과 평행을 맞췄습니다.

문제는 한강을 오가는 배였습니다. 결국 다리가 열리는 장치(승개장치)가 마련됐죠. 영국 런던의 타워브리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덕택에 장안의 명물로 ‘왕 인기’를 끌었죠. 제 교각 20~21번 사이 15m 구간은 골재채취선 등 바지선이 통과할 수 있도록 크레인으로 다리 상판을 들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1976년 10월 25일 밤 11시. 다음날 새벽 5시까지 6시간 동안 이 승개 시설이 처음 가동됐습니다. 30t짜리 기중기 2대가 무게 16t인 승개교 상판을 번쩍 들어올렸죠. 지켜보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어요. 물론 지금은 그런 광경을 볼 수 없습니다. 1985년 구조 변경 공사로 승개시설이 사라졌기 때문이죠.

▶2층에 지어진 반포대교, 일석삼조 효과

지금 제 위층에는 동생인 반포대교가 살고 있죠. 저와 마찬가지로 용산구 서빙고동과 서초구 반포동을 연결하죠. 다리폭은 15~25m(6차선), 길이 1490m 규모랍니다. 당시 215억원을 들여 1980년 1월 착공, 1982년 6월 25일 완공했습니다.

제 위에 반포대교가 들어선 것은 강남 개발 덕택이죠. 1970년대 말부터 강남 거주자가 크게 늘자 경부고속도로 통행량이 급증했습니다. 이를 소화하기 위해 제 위층에 다리를 또 하나 놓은 것이죠.

사실 반포대교 때문에 제 인기는 다소 시들해졌어요. 하늘에서 보이지 않죠. 구글어스에서도 제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답니다.

반포대교를 제 위에 놓은 것은 또 다른 목적이 있어요. 유사시 용산 미군기지에서 저를 타고 이동하면 반포대교의 엄호(?)를 받아 신속하게 한강 이남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죠.

주판알도 굴려본 듯합니다. 교각 하나에 두 개의 다리를 건설하면 공사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을 한 듯해요. 결국 안보-교통량 분산-비용 절감, 이 일석삼조 효과를 노려 제 위에 반포대교를 만든 거랍니다.

청담대교 아시죠? 그 다리도 2층입니다. 1층에는 지하철이, 2층에는 자동차가 지나가죠. 그런데 너무 높죠. 운전자들이 청담대교에 진입할 때 어지럼증을 느낀다고 하더군요. 근데 반포대교는 제 높이가 낮은 덕택에 2층 높이에 건설됐지만, 진입로가 가파르지 않아 운전에 편리하답니다.

▶잠수 타이밍? 팔당댐이 관건

비가 많이 오면 사람들은 제가 당연히 물에 잠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해입니다. 저는 제 맘대로 잠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팔당댐의 방류량에 따라 제 운명이 결정됩니다.

사실 저는 쉽게 잘 안 잠깁니다. 제가 물속에 있는 기간은 1년 중 장마 기간인 10여일밖에 안 되죠. 저는 한강 수위가 6.5m를 넘어서면 잠수를 합니다. 한강 수위가 5.5m를 넘어서면 사람 통행이 차단되고, 6.2m를 넘어서면 차량도 다닐 수 없죠.

한강 수위가 5.5m를 넘어서려면 팔당댐에서 초당 4000t을 방류해야 합니다. 6.2m를 넘어서려면 팔당댐에서 초당 5000t 이상을, 6.5m를 넘으려면 초당 7000t을 7~8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방류해야 합니다. 조수간만의 차에도 민감해요. 한강이 서해와 바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죠. 팔당댐 방류량이 일정하더라도 날짜에 따라, 밤낮에 따라 한강 수위는 수시로 변하죠.

이상 제 소개를 마칩니다. 독자 여러분, 이 기사를 읽고 앞으로 잠수교를 지날 때 저를 한번 더 생각해주세요.

김수한 기자/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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