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의 ‘물폭탄’으로 사망자와 침수피해가 늘고 있는 가운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간 판례를 보면 법원은 자연재해라고 하더라도 사전에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이나 관리조치를 소홀히 한 인재(人災)인 경우에는 책임을 묻고 있다.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와 춘천 산사태와 같은 사고는 재해방지 조치를 얼마나 잘 했느냐에 따라 국가의 책임이 달라진다.
2008년 7월 경기도 가평군의 야산에서 한 민간 사업자가 진행하던 연수원 조성 현장의 공사장 옹벽이 하루 누적 강우량 237㎜의 폭우로 무너지며 산사태가 나 아래에 있던 펜션 건물이 부서지는 사고가 났다.
붕괴된 펜션의 주인은 “급경사지에 산지전용 허가를 내줬고 이후 재해방지 조치를 제대로 관리ㆍ감독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며 가평군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서울중앙지법은 가평군이 토지소유자, 시공자 등과 연대해 4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또 임도(林道)개설공사로 인해 수해, 산사태를 막아주던 자연림이 벌목돼 재해발생 위험성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않아 집중호우 당시 사망사고가 일어난 경우, 자연적 조건과 과실행위가 경합돼 있다고 하더라도 손해배상의 범위를 정하는데 자연력의 기여분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의 2001년 판례도 있다.
그러나 2008년 7월 경북 봉화군 참새골에서 산사태로 밀려 내려온 토사에 승용차가 휩쓸려 4명이 사망한 사고에서는 지자체의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다. 대구고법은 “사고가 난 도로는 이전에 도로 유실이나 산사태 등이 발생한 적이 없는 도로이고 당시 자동우량경보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된 점 등을 고려하면 관리상 하자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자동차 침수 피해 등도 과실 여부에 따라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2008년 7월 빗물이 고인 경기 안성시의 저지대 도로에서 앞차를 따라 운전하다가 침수로 인해 고장난 차량에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운전자와 국가는 3대 1 비율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배수시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교통통제 등 침수에 따른 조치를 충분히 취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2008년 7월 태풍 ‘갈매기’의 북상으로 경기 파주시 문산천에 있는 농로인 세월교가 침수된 상황에서 승용차를 몰고 건너다가 급류에 휩쓸려 2명이 사망한 사고에서 서울중앙지법은 다리를 폐쇄하거나 출입제한 조치를 하지 않은 파주시에 일부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1997년 8월 집중호우로 제방도로가 유실되면서 보행자가 강물에 휩쓸려 익사한 경우에도 법원은 국가의 책임을 물었다. 대법원은 “사고 당일의 집중호우가 50년 빈도의 최대강우량에 해당한다는 사실만으로 불가항력적 사고라고 볼수 없고 통행제한 등의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2000년 5월 판결했다.
<오연주 기자 @juhalo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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