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됐나요?.”(전광우 이사장)
“계산해 보니 취임 이후 하루에 1000억원씩 기금 운용 수익을 올렸던데요.”(김 부장)
“단기적인 숫자보다 장기적으로 키워나가는 게 중요합니다.”(전 이사장)
전광우(62)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시종일관 담담한 표정이었다. 평소 소탈하게 미소 짓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 2009년 12월 1일 취임 이후 600일 동안 58조원의 기금운용 수익을 올렸음에도 그의 대답은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기금운용 투명성에 대한 지적을 받은 영향으로 보였다. 그는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커진 것 이상으로 투명성을 업그레이드 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하루에 1000억원이나 기금운용 수익을 올리고도 마음 고생을 해야 하는 전 이사장을 만났다. 어느덧 그는 3년 임기의 전환점을 돌고 있었다.
■“기대되는 도덕성 기준이 높아졌다”
-임기의 전반전을 마쳤다. 소감은 어떠한가?
▶국민연금은 2개의 핵심 기능이 있다. 하나는 국민연금제도 운영이며, 다른 하나는 기금운용이다. ‘운영과 운용’이 핵심 기능인 셈이다. 제도 운영 면에서 숫자로 드러나는 성과는 임기 중에 가입자가 100만명이나 늘었다는 점이다. 또 기금운용 수익률이나 수익금액도 나쁘지 않았다. 양쪽 측면에서 볼 때 참 다행스럽다.
-요즘 직원들 만나면 무슨 이야기 하는가?
▶기금쪽 펀드매니저를 만나면, 기금 규모가 커지고 시장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기대되는 투명성 수위가 높아지는 점을 강조한다. 책임감, 도덕성 등 업무 수행에 있어서 요구되는 여러가지 윤리적인 기준도 그만큼 업그레이드 돼야 한다. 앞으로 해 나가야할 과제이다.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에 국민들이 많이 놀랐다.
▶보건복지부 테스크포스팀에서 투명성 강화 방안을 만들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직원 윤리교육을 강화하고 철저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해 나가겠다. 특히 평소 관행으로 받아들였던 것들을 일체 타파해 국민들의 높아진 기대에 부응토록 하겠다.
-해외 연기금들은 운용 투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연차보고서나 홈페이지 게시를 통해 기금운용 현황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공개하고 있다. 또 거래상의 이해상충 관련자 참여 배제, 내부자 거래 금지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윤리 규정을 갖고 있다. 조직내 상시 감사기구를 설치하고 정기적인 외부 감사를 실시, 거래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적절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대비하고 있다. 이러한 사항들은 대부분 국민연금에도 적용하고 있으나 철저한 쇄신 노력을 더하겠다.
■“의결권 행사는 정치논리로 접근하면 안된다”
-외부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둘러싼 논란이 많다. 공단의 입장은 무엇인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취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말하는 입장이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의 재산을 관리하는 수탁자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투자 기업의 중장기적인 가치 제고에 관심 가져야 하며 주주로서 적절하고 긍정적인 주주권 행사를 해야 한다. 다만,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하는 주주권 행사도 자칫 오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에 주주권 행사는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논리와 시장원칙으로 접근해야 한다.
-세계 연기금들은 어떻게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나?
▶일본의 공적연금인 GPIF는 주주권 행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CalPERS(미국), ABP(네덜란드), CPP(캐나다)를 비롯한 미국과 유럽의 주요 선진 연기금은 투자기업의 장기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해외 연기금의 전반적인 추세는 책임투자와 관련하여 주주권 행사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의결권 행사 지침이 너무 기계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사외이사를 파견할 생각 있는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정해진 지침을 기반으로 행사한다. 시장 상황과 경제 여건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행사 지침의 적절성을 검토한다. 지금으로선 사외이사 후보 추천과 같이 적극적 주주권 행사 방안의 일환으로 준비되는 것은 없다. 전문가 및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의 의견을 수렴하고 해외 선진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공정하고 투명한 행사 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
■“기금운용의 새로운 지평 열겠다”
-해외 투자를 늘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금이 커지는 상황에서 해외투자 확대는 필수다. 국내시장의 소화 능력은 국민연금 증가 속도를 못따라 간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 투자를 확대할 경우 ‘집중의 리스크’가 더 커진다. 해외 부동산을 매입하고 현지 사무소를 개설하는 것은 해외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다. 또 해외투자는 주식 채권 대체투자 등으로 다변화시켜 집중의 리스크는 줄이고 있지만, 외환 리스크와 컨트리 리스크 등 국내에 없는 위험 요인들이 있다. 이들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뉴욕에 이어 홍콩이나 런던에도 현지 사무소를 개소하는가?
▶그렇게 추진할 계획이다. 나에게 주어진 미션은 기금 운용의 글로별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연금 인력의 자체 역량 강화도 필요하지만, 해외 선진국이나 신흥국의 좋은 프로젝트를 확보할 수 있는 네트워킹도 중요하다. 세계 시장에선 정보력이 투자자들의 경쟁력을 결정하기도 한다. 좋은 투자 대상을 발굴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가입자 2000만명 시대 임박했다”
-강남 아주머니들의 임의가입이 많이 늘었다고 들었다. 인기가 어느정도인가?
▶강남에 거주하는 가정주부 뿐만 아니다. 다른 지역의 아주머니들도 임의가입에 나서고 있다. 지역사무소에는 막무가내로 ‘임의’로 해달라고 찾아오는 주부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욱 긍정적인 부분은 일시금으로 받아갔다가 다시 반납하는 가입자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국민연금을 불신해 일시금으로 받아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신뢰회복이 많이 됐다.
-취임 이후 가입자 많이 늘었나?
▶취임 이후 가입자가 대략 100만명 정도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만 49만명이다. 올해 안에 가입자 2000만명 시대가 열릴 수도 있을 듯하다.
-임의가입자 증가하면 연금 소진 시기도 늦춰지는 것인가?
▶임의 가입자 수는 6월말 현재 약 13만명이다. 전체 가입자 1950만명 대비 0.6%에 불과해 연금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다만 임의가입이 증가한다는 것은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임의가입 증가 현상을 보고 일반 가입자도 획기적으로 증가하는 긍정적 효과를 누리고 있다.
국제금융전문가인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미션은 뚜렷했다. 투자 다변화를 통해 기금운용의 새로운 지평(New Horizon)을 열고 국민들의 노후를 더욱 탄탄하게 보장하겠다는 것. 3년 임기의 절반을 마치고 후반전에 들어선 그의 활약이 어디까지 펼쳐질 지 기대된다. |
■“세계 4대 연기금 글로벌 경쟁력 강화하겠다”
-남은 임기동안 하고 싶은 3가지 일을 꼽는다면 무엇인가?
▶우선 베이비부머의 은퇴와 수급자 300만 돌파를 계기로 국민의 노후 준비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노후설계 서비스와 고품질의 급여 서비스를 확대하겠다. 또 장애인 복지 증진을 위해 올해 본격화된 장애등급 심사와 오는 10월부터 실시 예정인 장애인활동지원 업무 등에 모든 정성을 다하겠다. 다음으로 세계 4대 연기금으로서 기금 규모에 걸맞는 투자 다변화, 운용 역량과 리스크 관리 강화 등을 통해 국민의 소중한 자산인 기금의 글로벌 경쟁력을 더욱 강화시켜 나갈 것이다. 또 경영 혁신에 주력하여 창의적이며 열정적인 조직문화 구축, 선진 노사관계 정립 등을 이루어 나가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남은 기간도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자세로 주어진 소명을 완수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인터뷰가 끝날쯤 전 이사장은 오프더레코더(비보도)를 전제로 걱정거리 하나를 털어놨다. 기금운용 인력 확보에 대한 걱정이 많다는 얘기였다. 기금운용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수 인력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데, 감사원 감사가 확대되면서 기금운용본부 신입사원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전언이다. 비보도 약속까지 깨면서 그의 우려를 지면에 옮기는 것은 그만큼 국민의 노후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기금 규모가 300조원을 넘어서면서 투명성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는 등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기금운용 성장판까지 꺾여서는 안될 것이다.
정리=박도제 기자/pdj24@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