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죄를 저지른 사람 대신 범죄와 관련 없는 사람을 범인으로 바꿔치는 과정에 가담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법정에 서게됐다.
김모(49) 변호사는 올해 초 휴대전화 문자발송 사기 혐의로 기소된 강모(29)씨의 변호를 맡게 됐다.
강씨는 2009년 9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사진 보냈어요. 버튼 눌러 확인해요’라는 문자메시지 20여만건을 보내 수신자가 무심코 사진을 확인하면 1건당 2990원의 열람료가 부과되게 해 6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강씨는 순순히 혐의를 인정한 데다 수사에 협조한 점을 고려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선고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재판부는 강씨가 특수절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며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실형 선고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김 변호사는 더 황당한 말을 들어야 했다.
검찰과 경찰에서 자신이 범인임을 순순히 인정한 강씨가 갑자기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강씨는 검찰에 반성문을 보내고 1심 재판부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강씨는 항소이유서에서 “진범은 신모(32)씨와 정모(32)씨다. 이들이 벌금이나 집행유예로 풀려날 거라고 해서 매달 200만원씩 받는 대가로 내가 대신 처벌받기로 했던 것”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의 의뢰인은 강씨였지만 실제 변호사 비용을 대는 사람도 다름 아닌 신씨였다.
강씨가 진술을 번복하자 신씨는 김 변호사에게 강씨의 주장이 사실임을 실토한 뒤 강씨를 만나 다시 진술을 번복하라고 설득할 것을 요구했다.
강씨는 진술을 재번복하는 대가로 2억원을 요구했지만 김 변호사의 중재로 1억원에 진술을 뒤집기로 약속했다.
김 변호사는 우선 강씨의 어머니에게 5000만원을 전달하고 확인서까지 받아왔다. 나머지 5000만원은 항소심 결과가 1심과 같이 나오면 주기로 했다.
강씨는 약속대로 항소심에서 자신이 진범이라고 진술을 또 뒤집었다. 그러나 서울고법과 서울고검은 강씨의 항소이유서가 매우 구체적인 점에 의심을 품고 사건을 재수사하도록 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검사 김영대)는 지난달 11~12일 신씨와 정씨를 체포하고 이들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신씨 등이 검찰조사에 대비해 강씨에게 외우도록 한 A4 용지 20쪽 분량의 시나리오를 찾아냈다.
검찰은 신씨 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김 변호사도 강씨가 진범이 아닌 점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범인을 바꿔치기하는데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달 26일 김 변호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김 변호사가 강씨의 어머니에게 돈을 전달하고 받은 확인서를 확보한 뒤이달 1일 김 변호사를 범인도피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 변호사는 비밀유지 의무 등 정당한 변론권의 범위 내 행위로생각했다고 주장했으나, 신씨가 범인임을 명확히 알았음에도 범인도피에 적극적으로가담해 실체적 진실 발견에 협조해야 할 의무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홍성원 기자@sw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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