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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년을 날씨에 마음 졸인 이 남자, 조석준
최근 온 나라가 물폭탄에 들썩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던 이가 있다. 바로 조석준 기상청장이다.

취임 6개월여. 이제 좀 업무파악이 끝났을까 싶은데 조석준 기상청장은 이미 도가 튼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벌써 6개월이 됐나요? 태풍에, 장마에, 폭염에, 이번 국지성 호우까지 치르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습니다”라며 속 좋게 웃어버린다.

국내 1호 기상전문기자를 시작으로 기상청 수장까지 38년째 날씨와 함께 하고 있는 조석준 기상청장을 지난 21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지난 7월 26일 국지성 폭우가 내린 뒤 e-메일 인터뷰를 한 차례 더 진행했다.)

-취임 6개월이 돼간다. 어떻게 지내나.

▶한마디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말 그대로 기상청의 불이 꺼지지가 않는다. 날씨가 이토록 국민들의 관심을 받으니 좋기도 하면서도 막중한 책임감도 느낀다.

-단도직입적으로… 날씨가 왜 그러나.

▶전 지구적으로 기후변화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뜨거워지고 있다. 기후변화 정부 간 위원회(IPCC)의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 결과에 따르면 21세기 말 전 지구 평균기온은 20세기 말 대비 4.8도, 강수량은 6% 증가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한반도는 전 지구적 예상 상승폭보다 기온(1도↑)과 강수량 증가폭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됐다.

지구가 뜨거워지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온실가스 등 인공적인 원인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기후변화는 인공적인 원인 외에도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태양에너지의 변화, 대기ㆍ해양ㆍ생물권 간의 상호작용 및 내부 변동성에 의해서도 기후변화는 일어난다. 지구가 빙하기, 해빙기를 반복한 것과 비슷하다.


조석준 기상청장이 지난달 21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위치한 기상청 광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기상예보의 정확도가 높아졌는데.

▶지난 60년간 우리나라의 기상 수준이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7개국밖에 없는 기상위성을 소유한 나라다. 또 한국은 20년째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전 지구의 기상관측 정보를 활용하고 있다. 슈퍼컴퓨터를 통해 전 지구 수치모델을 운영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11개국에 불과하다. 관측망 확충, 수치모델 성능 개선, 예보관 교육 등도 결실을 맺고 있고 초단기예보, 동네예보 등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향후 정부부처가 각각 갖고 있는 25개 기상레이더 자료를 활용하면 더 정확한 기상예보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막판에 온 국지성 호우로 비 피해가 너무 크다. 비난 여론도 있는데.

▶먼저 이번 호우로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해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슈퍼컴퓨터를 포함해 현재 현존하는 모든 과학 관측장비를 동원하더라도 강수량을 정확히 예보하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 여름철 집중호우는 지역별로 편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어느 특정 지역에 대해 최대강수량을 예측하기에는 과학적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수량을 예보할 때 10~50㎜, 50~150㎜ 이상 등 범주로 표현을 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기습 국지성 호우의 빈도와 강도가 세진다는데 이에 맞춰 기상예보 시스템도 바뀌어야 하는것 아닌가.

▶기상청은 올해부터 천리안 위성을 통해 한반도의 기상 상황을 15분 간격으로 감시하고 있으며 슈퍼컴 3호기를 본격 예보에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예보가 상당히 안정되고 특히 몇 시간 이내의 초단기 예보는 매우 정확하다고 자부한다. 특히 최근 들어 스마트폰이나 SNS를 통한 정보전달이 활성화되면서 재해예방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결국 재해를 막기 위해서는 좀 더 높은 정확도로 빠르게 알리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맞다. 기상정보는 생산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빨리, 필요로 하는 곳에 전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즉, 기상정보의 유통이 잘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미디어와 IT가 발달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면 된다. 기상청은 기존 KBS1 라디오 같은 재난 방송 이외에 뉴미디어인 SNS나 스마트폰을 활용해서 맞춤형 재해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노약자와 영유아 보호를 위한 SMS특보도 보내고 있다. 올 하반기나 내년 초에는 자동차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에 기상자료를 얹어서 제공하는 웨비게이션(웨더+내비게이션) 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지금 어디에서 강한 비가 오는지 등을 한눈에 파악해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 대기학과를 나왔다. 지금도 낯선 대기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

▶우리 때는 특히 전자공학과ㆍ화공과가 인기였다. 난 이과였지만 단순한 공대 학문을 배우고 싶진 않았다. 문과 쪽에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다. 단순히 외우고 그런 것보단 지질학과, 대기학과 등 분석하고 연구하고 미래 예측하는 부분에 관심이 많았다. 학문 자체에 의미를 뒀다고 할까. 그래서 대기학과를 갔고 그 뒤로 공군기상장교, 기상전문기자 등을 거쳐 여기까지 오게 됐다.

▶언론, 학계, 기업, 정부까지 다 거쳤다. 어디에 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나.

-어디든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었다. 20~30대는 역시 언론에서 기자생활을 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워낙 뭔가 새롭게 하는걸 좋아하기 때문에 항상 선봉자적인 역할을 즐겼고 그래서 생경할 수도 있는 직업들도 나는 다 재미있었다.

▶스타기자였다. 당시 재미난 에피소드는 없나.

-사람들은 날 1호 기상전문기자로 기억하지만 사실 난 방송계에서 기상보다 축구로 먼저 떴다. 난 서울대 축구팀 선수 출신이다. 이용수 KBS 해설위원, 강신우, 황보관 축구선수가 내 학교 후배다. KBS에 입사하고 1982년 5월에 전국 기자축구대회 했는데 이때 내가 5골을 넣으며 만년 예선탈락팀인 KBS를 우승시켰다. 그 공로로 1년에 5명밖에 안 준다는 모범사원상도 수상했다. 그때 보도국장님이 소원이 뭐냐고 물었는데 갑자기 기상청에 컬러TV가 없다는 게 생각났다. 컬러TV를 기상청에 기증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곤 기상청에 기증했다. 당시 내 월급이 27만원이었는데 컬러TV가 80만원이었다. 기상청과는 뭔가 남다른 인연인 것 같다.(웃음)

-올해로 날씨와 함께한 지 38년이 됐다. 솔직히 지겹지 않나.

▶절대 지겹지 않다. 오히려 다양한 직장에서 날씨를 다루기 때문에 재밌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검ㆍ경찰 쪽보다 서비스하는 공직이 인기가 많다. 날씨를 다루니 자연과 벗하고 살 수 있어 너무 좋다. 수년 전 한 일본 기사에서 일본인들은 일기예보를 가족 다음으로 신뢰한다는 기사를 봤다. 그때 기상, 날씨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때 날씨는 의술처럼 생명을 살리는 기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날씨는 나의 OOO으로 표현하자면?

▶동반자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부모님, 선생님 같은 존재라고 할까. 내 전부다. 40여년 외길 인생 동안 날씨는 나를 바른 길로 안내해주는 등불이었다. 그래서 내가 40여년 동안 날씨 하나만 보고 살아올 수 있었다.

-기상청장 이후의 개인적인 꿈 또는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뭘 하고 싶다고 해서 자리를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 그냥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지금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새로운 기회가 생기더라. 직업이 아닌 역할로 꼽자면 ‘긍정의 힘’으로 여러 사람의 잠재력을 키워주는 일을 하고 싶다.

황혜진기자/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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