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께, 경기도에 사는 A모 씨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전부터 알고 지내던 후배와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후배의 남편이라는 B모씨가 찾아와 각목으로 자신을 때리더니, 심지어 흉기를 꺼내들고 자신을 찌르기까지 한 것이다. 흉기에 찔린 A씨는 급한 마음에 옆에 떨어져 있던 각목으로 B씨를 때려 그를 저지했다. 이후 경찰이 출동하자 B씨는 “나도 각목으로 맞았다”며 A씨를 맞고발했다. 자칫하면 ‘쌍방폭행’으로 입건될 판. 그러나 A씨는 최근 경찰청이 실시하고 있는 ‘폭력사건 쌍방입건 관행 개선’에 따라 정당방위로 인정돼 입건을 면할 수 있었다.
경찰청은 지난 3월부터 시행중인 ‘폭력사건 쌍방입건 관행 개선제도’ 추진 결과 지난 3월~6월까지 약 3개월동안 ‘정당방위’ 처리 사례가 511건(월 평균 127건)으로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행전인 1월, 정당방위 처리사례가 전국 17건이었던 것에 비하면 약 7.5배 증가한 수치다.
경찰은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요건에 대해 “먼저 상대방이 폭력을 가해 왔을때 이를 피하기 위해 가하는 최소한의 폭행”이라 설명했다. 쉽게 말해 때리려는 사람의 팔을 잡고 저지하거나 멱살을 잡고 저지하는 등 폭행을 가하면 이전에는 ‘쌍방폭행’으로 분류 됐지만 이젠 정당방위로 보고 입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511건의 정당방위중 계속되는 폭행을 저지하기 위해 상대방의 팔이나 멱살을 붙잡거나 몸을 밀치는 등 최소한의 자기방어를 한 경우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경우가 299건으로 전체의 58%를 차지했다.
그러나 A씨의 사례처럼 각목을 이용해 상대를 때리거나, 넘어뜨린 후 팔을 꺽는 경우, 혹은 이빨로 물어 상처를 낸 경우에도 목격자 진술, CCTV분석등을 통해 정당방위로 처리될 수 있었다. 정당방위의 범위가 예전에 비해 매우 넓어진 셈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먼저 때리거나 ‘때려봐’라는 식으로 도발하지 말고, 상대의 폭력을 막기 위해 최소한도로 폭력을 행사하며, 상대가 멈추면 같이 멈춘다고 생각하면 어느정도 정당방위의 요건을 만족한다 볼 수 있다”며 “목격자, CCTV등 정당방위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는 것도 필수적이며, 급할때는 핸드폰등에 있는 동영상 촬영기능을 사용하면 좋을것”이라 충고했다.
<경찰청이 말하는 정당방위 요건 8가지>
1. 침해행위에 대해 방어하기 위한 행위일 것
2. 침해행위를 도발하지 않았을 것
3. 먼저 폭력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
4. 폭력행위의 정도가 침해행위의 수준보다 중하지 않을 것
5.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
6. 침해행위가 저지되거나 종료된 후에는 폭력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
7. 상대방의 피해 정도가 본인보다 중하지 않을 것
8. 치료에 3주(21일) 이상을 요하는 상해를 입히지 않았을 것
<김재현 기자 @madpen100> madpe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