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軍) 장성 출신까지 군사기밀을 빼내 외국 군수업체에 넘기는 ‘스파이 행각’을 벌인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군 출신과 군수업체간 유착은 발본색원되고 있지 않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5~6년 간 기밀을 유출해 재판에 넘겨진 군 출신 인사들 중엔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없어 보다 엄중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별 달고 전역→컨설팅·무기중개업체 대표→기밀유출’…끊기 어려운 비리사슬=4일 검찰에 따르면 김상태(81) 전 공군참모총장(현 승진기술 대표)은 2004년~지난해 초까지 군사기밀 2~3급에 해당하는 공군의 무기 구매 계획을 12차례 빼내 미국 록히드마틴사에 넘긴 혐의로 최근 불구속기소됐다. 김씨는 그 대가로 2009년~2010년 사이에만 25억원의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승진기술은 록히드마틴의 한국 무역대리점으로, 김씨가 예편한 뒤 세운 회사. 공범으로 함께 불구속기소된 이 회사의 전 부사장 이모씨와 상무이사 송모씨도 모두 공군 출신이다. 검찰 관계자는 “군 선·후배나 친분이 있는 현직 간부 등을 통해 군사기밀을 비교적 손쉽게 빼냈다”고 했다.
장성 출신과 군수업체 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데 따른 이 같은 비리 사슬은 꽤 오래 전부터 형성돼 있는 걸로 추정된다. 장성 출신은 예편 후에도 후배들을 상대로 인적 네트워크를 가동해 기밀에 접근할 수 있다. 외국 군수업체 입장에선 이들을 통해 한국의 무기 구입 계획 등을 사전에 파악하게 되면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어 공생관계가 구축되는 것. 실제로 대법원에 따르면 2005년 이후 올해까지 6년여 동안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자는 50여명에 달한다. 육·해·공군 관계자가 망라돼 있으며 방위사업청 등에서 군수 정보 작전 분야에 몸담았다가 예편한 뒤 신무기 도입 관련 기밀을 돈을 받고 유출했다.
비리 사슬이 끊기지 않는 건 이런 범죄에 대한 처벌이 미약한 것도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군사기밀보호법을 어겨 재판을 받은 50여명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전무하고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철창행으로 면했다.
▶전군(前軍)예우 차단책 절실=‘별’ 출신이라면 현역들은 일단 예우를 해 정보관리에 허술해진다는 점도 문제다. 2007년 공군 소장으로 예편한 뒤 컨설팅 업체를 차리고 스웨덴 군수업체 사브그룹(SAAB AB)의 한국법인에 국내 항공우주사업 진행상황 등을 알려준 혐의로 집행유예가 확정된 김모씨가 대표적 예다.
그는 예편한 그 해 국방대학교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강하며, 비밀취급인가가 해제됐음에도 예비역 장성 신분인 데다 논문 작성에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별다른 제재 없이 이 학교 도서관 비문ㆍ특수자료 열람실에 들어가 군사 2~3급 기밀인 ‘합동군사전략 목표 기획서’ 의 일부(특정 미사일 도입 시기와 개수 등)를 빼낸 것. 이런 식의 범죄가 계속되고 있는 데도 군 당국의 안이한 현실인식은 바뀌지 않고 있다. 공군 관계자는 “김 전 총장은 전역한지 30년 가까이된 사람으로, 민간인 신분”이라고 했다.
한편 군 출신들은 현직에서 물러나면 경제부처 공무원들과는 달리 취업에 제한을 받지 않아 이른바 ‘전군(前軍)예우’의 수혜자가 돼 비리연루에 노출될 개연성이 크다는 지적이 거세다.
<홍성원ㆍ김재현 기자@sw927>
hong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