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에서 발주한 전기공사 관계자 70여명이 15억원 어치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10일 뇌물액수가 많은 한전 직원 4명과 뇌물제공 업자 1명을 우선 구속하고 나머지 인원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같은 대규모 뇌물수수가 전기공사의 부조리한 관행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현행 전기공사업법에 따르면 전문기술을 요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하도급을 주는 행위는 불법이다. 그러나 전기공사 업계에서는 원청회사가 입찰을 통해 한전이 발주한 전기공사를 수주받고 입찰가의 58~70% 가격으로 일괄 하도급을 주는 행위가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이들 원청회사는 서류상으로만 등록돼있을 뿐 실제로는 시공 인력과 설비가 없는 유령회사에 불과했다.
이같은 원청회사의 일괄하도급 관행은 전기공사가 시작된 이래 계속돼 왔다. 한전 감독관들은 현장의 불법하도급을 묵인해주는 대가로 공사대금의 2~5%에 상당하는 금품과 술, 골프 접대 등의 향응을 제공받았다.
구속된 한전 감독관 김모(48)씨는 18억원 상당의 공사를 수주한 원청업체가 수주금액의 70% 가격으로 하도급을 주도록 알선한 대가로 8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는 수주금액의 5%인 8000만원의 현금을 햄버거 봉투에 담아 제공했다. 경찰 관계자는 "누가 먼저 달랄 것도 없이 수주금액의 2~5%를 현금으로 주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감독관 김모(44)씨는 특정업체에 5000만원을 투자해 주주 지위를 얻은 뒤, 자신의 부인을 업체에 취직시켜 월 200만원씩 총 6000만원을 월급 명목으로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과장급 직위로 취직된 김씨의 부인은 회사에 가끔씩 출근해 사실상 업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 김씨는 투자한 금액의 배당금으로 6500만원을 받기도 했다.
경찰은 구속된 김씨 등 5명 외에도 노모(56)씨는 부인 명의로 주류백화점을 운영하며 공사관계자들에게 시가보다 10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양주를 판매해 1억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중이다. 노씨는 시가 2만~3만원짜리 저렴한 양주를 여러차례에 걸쳐 공사 관계자 15명에게 수십만원의 가격으로 팔았다.
이밖에 나모(52)씨는 급전이 필요한 시공사에 "돈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겠다"며 친분이 있는 강남의 룸살롱 여주인 돈을 시공사에게 빌려줘 연 60%의 높은 선이자를 받게하고 이 집에서 상습적으로 술접대를 받아 매상을 올려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현장감독관과 시공사들의 유착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었으며 조사중인 일부 한전 직원들은 "감독관 한명이 구조를 바꿀 수 없었기 때문에 알면서도 묵인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뿌리깊은 관행의 치부가 드러났다.
경찰관계자는 "뇌물 수수 금액이 큰 직원에 대해서는 추가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나머지 수사대상자도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며 "불법하도급 실태 묵인과 저가 하도급으로 인한 부실공사 부분도 추가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자영 기자/nointeres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