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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을 파는 상인이지만, 고서(古書)로 역사를 바꾼다. 한국학서양문헌박물관 운영하는 윤형원씨
“저는 상인입니다. 하지만 오래된 책 하나를 발견해 그게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영향을 미칠때 거기서 오는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사명감도 느끼구요.”

서울 을지로 5가 270번지의 한 허름한 빌딩. 이 건물 4층에는 간판이 없는 서점 하나가 있다. 서점의 주인은 ‘최초의 박영효의 태극기’ 기록을 뒤엎은 윤형원(65)씨. 그는 ‘해상 국가들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s)을 통해 태극기의 역사를 다시 썼고 ‘하멜 표류기’의 프랑스어 초판본을 국내에 처음 공개한 장본인이다.

오래된 종이 냄새가 풍기는 서점 입구를 들어서자 팔을 허리에 붙이고 까치발을 들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많은 고서들이 쌓여 있다. 윤씨의 사무실과 5층에 가득한 책들, 그리고 경기도 자택에 있는 책까지 해방전에 나온 3000여권을 포함해 그는 한국고서 2만2000원권, 사진 등을 포함한 서양고서 1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1998년까지 무역업을 했었는데 IMF 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뭘할까 고민하다 우연히 고서적을 발견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책을 모으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게 책을 모으면서 하멜 표류기 프랑스어 초판본, 최초의 태극기 그림 등을 찾아 사람들에게 알렸다.

윤씨는 “희귀 고서적을 찾기 위해 외국 고서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프랑스, 독일어 등으로 키워드를 입력한다”며 헤진 책 한권을 보여줬다. 미국 정부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한국관련서적을 주석을 통해 설명한 책이었다. 그는 “여기 실린 책들을 찾기 위해 이 영문을 달달 외울 정도로 수십번도 넘게 읽었다”며 웃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얻은 직장이 국회도서관내 해외자료국 소련과에서 소련기관지를 번역하는 일을 할 만큼 영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한 것도 그가 이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됐다.

윤씨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큰 희열을 느꼈던 순간은 박영효의 태극기보다 2~3개월 앞선 ‘해상 국가들의 깃발’에 실린 태극기 사진을 찾아 냈을 때다. 그는 “그때 받았던 희열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역사를 바꾼 것 아닌가”라며 “힘들게 구한 책이 역사와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니 단순히 돈을 벌려고 일을 하는건 아닌 것 같다. 현재는 비영리목적으로 한국학서양문헌박물관(www.book1950.co.kr)을 운영해 한국사를 공부하는 국내외 연구진에게 책을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씨는 “제 책을 지난 10년간 1억5000원어치 넘게 사가신 분이 있다. 출판사를 운영하시는 분인데 책을 왜 그렇게 많이 사가시냐는 질문에 그분이 이런 말씀을 했다. ‘선생님의 책들이 제 출판사의 책에 밑거름이 됩니다’라고. 강한 사명감을 느꼈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며 웃었다.

박병국 기자/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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