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막힌 20대에 희망의 멘토
막연한 위로 아닌 현실적 조언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으면
밧줄을 놓아라” 등
가슴에 절절히 닿는 경구 많아
3040독자도 30% 넘어
해외 7개국 판권 수출도
“취업 때문에 속상한 일이 많았는데 책을 읽고 마음이 편해졌다.” “조금만 더 일찍,대학생 때 읽었다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담을 해줄 선배나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다.”
서울대 김난도(48) 교수의 트위터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은 독자들의 글이 매일 수십 건씩 올라온다. 취업난과 무한경쟁에 내몰려 스펙 쌓기,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며 누렇게 뜬 청춘들이 ‘아프니까~’를 통해 위로를 받고 있다. ‘그래 너 아픈 거 다 안다’는 토닥임에 뾰족한 마음도 가라앉는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밀리언셀러에 등극했다. 출간 8개월 만에 이뤄낸 초고속 밀리언셀러다. 출판사 쌤앤파커스(대표 박시형)는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18일 현재 97만부를 출고했으며, 다음주 초 100만부를 돌파한다고 밝혔다. 소설이나 자기계발서가 아닌, 에세이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기는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제외하곤 2000년대 이후 처음이다.
해외 7개국에 수출되는 성과도 올렸다. 최근 일본 디스커버리21 출판사를 통해 판권이 팔린 것을 비롯해 중국,대만, 태국, 네덜란드, 브라질, 이탈리아 등 7개국에 팔렸다.
이 책은 지난해 12월 24일 출간돼 3주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돌풍을 예고했다. 청춘의 고민을 꿰뚫는 날카로움과 위로와 격려의 진정성, 소통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이 통하면서 입소문을 타고 출간 1개월 만에 10만부를 돌파했다. 이 책으로 김 교수는 일명 ‘란도 샘’으로 불리며 ‘서울대생의 멘토’에서 단숨에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멘토’로 올라섰다.
‘란도 샘 열풍’은 단순히 책의 재미나 호기심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사회학적 의미가 있다. 막막한 현실과 답답한 미래로 한숨 쉬는 88만원 세대의 불안과 고민, 절망의 무게를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20대의 암담한 현실은 종종 사회 이슈화되지만 정작 이들에게 절실한 건 위로였다. 또 자신을 확실하게 이끌어줄, 믿을 만한 멘토가 필요했다. 이런 와중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진정성으로 스며들었다.
‘아프니까~’의 힘은 무엇보다 공감에 있다. 15년 동안 학생들을 상담하며 느꼈던 안타까움,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저자의 젊은 시절 고민과 경험을 바탕으로 써내려 감으로써 공감대를 넓혔다. 머릿속, 책상머리로만 쓴 게 아닌 소통의 결과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상담과 강의를 통해 학생들을 직접 만나고, 트위터나 블로그 등으로 얘기를 나누고, 전국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고민을 청취했다. 그래서 막연한 희망의 메시지 대신 가까이 느낄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이 가능했다.
무슨 말이라도 귀담아 줄 것 같은 경청의 자세, ‘나도 모자라지만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떻겠냐’식의 인간적인 태도도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저자 자신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지만 두 번이나 전공을 바꿔 지금은 소비자학과 교수다. 일종의 진로 실패 케이스다.
감성적이고 명쾌한 글쓰기도 청춘들의 가슴에 가 닿았다. ‘나는 그대들이 어리석었으면 좋겠다’ ‘스물넷 고작 아침 7시12분이다. 집을 막 나서려는 순간이다’ ‘안정에 성급히 삶을 걸지 말라’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으면 밧줄을 놓아라’ 등 통찰이 빛나는 경구가 많다.
종래 자기계발서에서 발견되는 처세술이 아닌,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며 느리게 가는 거꾸로의 삶의 방식을 제시한 것도 요즘 코드와 맞아떨어졌다.
여기에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일으킨 강단 신드롬의 확산, 트위터 등 SNS의 힘도 가세했다. 이 책의 인기는 비단 20대에 그치지 않는다. 출판사의 조사에 따르면 20대가 50%, 30ㆍ40대가 30%에 이른다. 자녀들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들여다보려는 부모 세대, 대학진학을 앞둔 10대들에게도 반향이 크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베스트셀러에는 사회의 특수한 분위기가 반영되게 마련”이라며 “개인주의적이고 대중문화에 심취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감수성, 고민 등과 상호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