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가계의 쌍끌이 빚 폭탄이 나라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가계빚 폭탄의 시계는 이미 돌아가 금융당국이 강력한 통제에 나섰고, 정부부채는 불투명한 통계의 커튼으로 가렸을 뿐 초강력 폭발력으로 불안감을 더한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개인 부채가 동시에 급증하는 현재의 우리 상황이 방치될 경우 미국이나 유럽보다 더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글로벌 경제상황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패러다임의 위기로 규정한다. 정부라는 ‘최후의 버팀목’이 무너져내린 것은 물론이고, 더 이상 정책적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지경까지 몰린 예는 일찍이 없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절묘한 결합인 유럽식 수정자본주의의 붕괴로 분석하기도 한다. 이른바 이데올로기의 위기(ideology crisis)’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유럽식 국가모델을 쳐다보는 우리는 정부 빚에 가계 빚의 문제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불안감이 가중되는 이유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정부채무’가 G20 국가들과 비교할 때 높지 않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말 기준 공식발표된 정부채무는 392조8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3.5%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통계한 G20 국가의 정부채무 평균은 GDP 대비 80.2% 수준이니 높은 건 아니다.
하지만 정부의 공식발표치는 국제기준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해마다 논란을 불러온다. 지금 정부채무 안에는 공기업, 연기금 등 잠재적 부채들은 빠져 있다. 물론 OECD나 IMF의 국제기준에도 공기업 부채는 포함돼 있지 않다.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하지만 “주요 선진국들의 공기업과 달리 우리 공기업은 정부 대행 사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OECD, IMF와 똑같이 공기업 부채를 제외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가령 100조원에 달하는 LH공사의 부채, 한국전력이 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해 생긴 부채 등은 미래의 정부와 국민에게 떠안겨질 빚이라는 얘기다.
심지어 옛 대우경제연구소장 출신인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공기업과 연기금 등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1638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설령 정부발표를 인정한다 해도 OECD 국가 중 최고인 증가속도는 위험수위다. 조세연구원은 국가채무가 2050년이면 GDP 대비 115.6%에 달할 걸로 전망한다.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을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OECD 평균은 20.6%이고 한국은 현재 8.3%다. 미국 15.9%, 일본 18.6%, 독일 26.7%인 선진국들을 따라가려면 엄청난 추가적 재정지출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개인부채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상태다. 가용소득에 따른 부채상환능력을 나타내는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46%로 매년 급증 추세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영국 등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 조정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이 비율이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 우리나라 개인의 금융부채는 지난 1분기에 이미 1000조원에 근접했다. 전 세계적으로 정부와 개인 부채가 동시에 늘어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정부와 개인 부채를 총량화하면 우리나라 국민이 지고 있는 빚은 유럽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고위관계자는 “경제의 주체인 정부와 개인, 기업의 부채총량이 어느 수준에 달하면 국가 전체가 위험한지 수치화된 것은 없다”면서 “앞으로 나타날 경제위기가 결국 정부와 개인 빚에서부터 출발한다면 적정수준의 총량이 어느 수준이어야 하는지 실증적으로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창훈 기자/chuns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