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최장수 6선급 보좌관의 숨가쁜 하루
23년 국회 근무 김현목 씨“모든 영광은 의원님에게
우리의 역할은 보조일뿐”
원활한 의정활동 보조위해
각종 정책공부·민원해결 등
週 7일 근무 생활은 기본
오는 19일 국감 앞두고
추석연휴 포기
“자긍심이 우리의 무기”
“국회의원 보좌관을 본 적이 있습니까.”
보좌관은 ‘반쪽 인간’이다. 상반신이나 하반신만 존재한다. 심지어 한쪽 팔만 남겨진 경우도 있다.
물론 실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TV화면에서 볼 때 항상 국회의원 곁을 지키고 있기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을 빛이라고 하면 보좌관은 그림자와 같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국회의원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그림자 있는 곳에 밝은 빛이 비친다’는 말처럼 보좌관이 있기에 국회의원은 더 빛난다. 그래서 보좌관을 알면 국회를 알 수 있다.
최장수 김현목 보좌관을 만나다
송훈석 민주당 의원의 김현목(47) 보좌관은 국회가 평생직장이다. 그는 23년 동안 국회에서 근무하며 ‘6선급 보좌관’ 별칭을 얻었다.
18대 국회에서 6선 이상이 7선의 조순형 의원, 6선의 박희태 국회의장과 이상득ㆍ정몽준ㆍ홍사덕 의원 5명에 불과한 걸 감안하면 대단한 기록이다.
김 보좌관은 스물다섯 살에 처음 국회로 들어왔다. 그는 “1986년 학생운동을 하다 구치소에서 들어갔는데 당시 수감됐던 분과 친해졌다”며 “그 분의 소개로 89년 김봉욱 의원 밑에 들어가 난데없이 최연소 보좌관이 됐다”고 회상했다. 이후 임춘원ㆍ정세균ㆍ송훈석 의원과 함께 일하면서 여의도 터줏대감이 됐다.
국회의원 보좌관은 결코 호가호위(狐假虎威ㆍ남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림)하지 않는다. 김 보좌관은 “그림자이며 실무자”라고 평했다.
그는 “모든 영광은 당연히 의원에게 가는 것”이라며 “우리는 보조 역할이다. 그게 정답이고 그림자의 책무”라고 했다.
사실 국회의원에겐 일이 많다. 새벽 약수터에 들러야 하고 마을 어르신들도 찾아봬야 한다. 어떤 민원인이 오더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공감하면서 들어야 하고, 국회가 열리면 각종 정책을 공부하고 다른 의원들과 토론도 벌인다. 이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없는 노릇. 그림자 보좌진이 있기에 가능하다.
보좌관 24시 “쉴 틈이 없다”
정기국회 100일은 보좌진들의 무덤이다. 국정감사부터 법안심사, 예산안 처리까지 쉴 틈이 없다. 20일 국감은 ‘지옥의 레이스’로 불린다. 주7일 근무는 기본.
최고참 김 보좌관의 하루도 여느 보좌진과 다르지 않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집에서 간단하게 뉴스를 체크하고 오전 8시 의원회관에 도착한다. 상임위와 본회의를 챙기고 간담회와 지역행사도 살핀다.
언론 기사를 한 차례 더 체크하고 지역 관련 현안을 정리하면서 업무를 시작한다. 다른 보좌진도 각종 보고서를 읽어보고 우편물도 훑는다.
오전 9시, 영감님(의원의 별칭)이 출근하면 곧바로 보좌진 회의가 열린다.
주요 일정을 보고하고 정책질의서 포인트를 상의한 뒤 지시사항을 받는다. 오전 10시, 민원인으로부터 문의전화가 걸려온다. 일일이 응대하고 기록을 정리해 민원대장을 만든다.
이러면 오전이 다 간다. 점심은 구내식당(2700원)에서 해결한다. 요즘같이 바쁠 때 점심식사는 20분이면 뚝딱.
오후 1시 민원인들이 몰려든다. 기자들도 수시로 찾아온다. 오후 2~4시 주로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방문한다. 자료를 요구하고 관계자들의 설명을 듣고 협의를 이끈다.
오후 6시 의원이 퇴근하기 전 그날 저녁과 다음날 일정을 다시 파악하고 종합해서 의원에게 보고한다.
퇴근은 남의 일. 국회 주변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면 비로소 본격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 테마별로 국감 자료를 검색하고 속기록과 회의록을 차분히 대조한다. 그러다 보면 일과가 마무리된다. 밤 10시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 뉴스를 보다가 자정쯤 잠든다.
“보람과 자부심으로 산다”
보좌관에게 이번 추석연휴는 언감생심이다. 곧 있을 국정감사 때문에 2000여명에 달하는 보좌진은 밤낮없이 자료분석에 몰두하고 있다. 국정감사와 예산심의가 있는 정기국회는 정신없이 바쁘기 때문에 상당수가 고향 찾는 것을 포기했다.
근무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다. 좁은 방에 많은 인원이 몰려 있어 사무실은 덥고 비좁다. 늦더위는 업무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그래도 보람은 있다. 김 보좌관은 “외환위기 때 공적자금법을 발의해 시스템화한 일이 기억난다. 최근엔 어민들의 위상을 제고시키기 위해 30년 만에 ‘어업인의 날’을 지정하게 됐다”면서 “의원님이 수협중앙회장에게 감사패를 받을 때 자긍심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보좌관들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그는 “일단 지금 모시는 분을 충실히 보좌해서 더 존경받고 훌륭한 의원이 되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본업에 충실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국가와 고향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했다. 보좌관 입문서 같은 저서 집필도 구상 중이라고 한다.
김 보좌관은 요즘 한국마사회와 국회의정연수원에 강의를 나간다. 그동안 의회 경험을 살려 국회 실무도 가르치고 피감기관과 원활한 소통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는 “훌륭한 보좌관이 있어야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지 않고 국회 법률 개정도 신속, 정확하게 이뤄지는 기반이 된다”고 했다.
양대근 기자/ bigroo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