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박찬종 변호사가 서울시장에 출마했을 때와 2011년 현재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은 기성 정치인이 아닌 데다 투표성향이 당시와는 확연히 변했다는 점,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초단기 레이스란 점은 1995년과 2011년을 단순 비교하기 어렵게 만든다.
박 변호사는 1995년 서울시장 출마 당시 3선의 국회의원이었다. 부산에서 한차례, 서울에서 두차례 금배지를 달았다.
그는 ‘무균질’이란 애칭을 얻으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렸지만, 결국 조순 민주당 후보에게 패했다. 돈과 조직이 취약한 데다 대선 2년여를 앞두고 이뤄진 ‘DJP(김대중과 김종필)’ 연합의 벽을 넘지 못했다.
투표성향은 대결구도였다. 3김 정치가 지역별 투표를 낳으면서 뉴 페이스가 파고 들 자리는 한정됐다. 그런데도 박 변호사는 33.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16년이 흐른 올해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3김(金) 시대’의 종식으로 기존 정당의 리더십이 약화됐다. 동서로 갈라졌던 지지층은 정치불신으로 중도ㆍ무당파의 증가를 불러왔다. 여야가 내년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중도’ 잡기에 사활을 거는 것을 보더라도 그렇다.
동서대립 구도는 2002년 대선 때부터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후 선거 때마다 보여준 대결구도는 세대 간 대립이었다. 20~30대 젊은층은 정치에 무관심하면서도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의 대안으로 야당을 지지했다. 현재 40대는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이란 히트 상품을 만든 주역이다.
최근 정치권을 바라보는 유권자들 사이에선 반(反)한나라당, 비(非)민주당 정서가 강하다. 더욱이 DJP연합 같은 보스 주도의 연대도 찾아보기 힘들다.
초단기 선거란 점과 보수ㆍ진보 진영이 위기에 직면했다는 점도 95년 때와 다르다. 이번 선거는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에 따른 보수의 위기에서 급작스럽게 치러지게 된데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부정 의혹까지 어우러지고 있다. 무소속 바람이 그 어느 때보다 거셀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이번 경우는 과거 박 변호사 경우와 다르다”며 “(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변호사는) 초당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동석 기자/dsch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