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대변인’ 난공불락 광주 출마선언…그것은 우발적 사고가 아니었다, 두자릿수 득표율? 그가 원하는 건 당선이다
광주 밖에서의 출마는 생각해보지 않았다호남을 외면하면 대한민국이 아프다
한나라당은 호남이 변하길 기다리지 말고
먼저 호남을 향해 변해야 한다
이미 밑바닥 민심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정현(53) 의원 이름 앞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변인 격’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다. 그의 휴대전화는 걸려오는 기자들의 전화로 쉴 새가 없지만, 모두 박 전 대표의 이야기만 물을 뿐이다. 국회의원 이정현은 기자들에게도, 또 동료 정치인들에게도 다소 낯선 비례대표 초선 의원 중 한 명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 7월 마지막 날 ‘국회의원 이정현’이란 이름으로 정치판을 놀라게 했다. 한나라당 현역 의원인 그가 한나라당의 난공불락인 광주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말 그대로 ‘무모한 도전’이다.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의 대변인으로 지역구를 골라 볼 수 있는데, 정치 인생의 마감을 스스로 직감한 7, 8선 의원이나 생각할 만한 일을 저지른 ‘국회의원 이정현’에게 세상은 비로소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그날의 출마 선언이 절대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의 정치 일생에 마지막 불꽃을 당기기 위한, 27년 동안 준비해온 치밀한 각본의 화려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3분짜리 인사말을 위해 7시간을 내려갈 때도 있어요. 내려가면 30분 단위로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 의원은 일주일에 7번, 한 달에 30번씩 서울과 광주를 오간다. 주요 의사 일정이나 회의, 그리고 박 전 대표의 공식 일정 수행을 빼놓고는 대부분 광주에서 보내는 셈이다.
광주행 첫 비행기에 몸을 싣고, 심야 우등고속버스로 돌아오는 생활도 벌써 4년째. 비례대표로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단 순간부터 고집스럽게 ‘광주 지역구의 한나라당 의원’이라는 정치인 이정현의 꿈을 실천해왔다.
▶출생 및 학력=1958년 전남 곡성 출생. 광주 살레시오고, 동국대 정외과 졸업 ▶주요 경력=한나라당 중앙정치연수원 교수, 한나라당 정책기획팀 팀장, 박근혜 후보 캠프 대변인, 18대 국회의원(비례대표) ▶ 주요 활동=18대 국회 국제경기대회 및 유치지원특별위원회 위원, 5ㆍ18 민주화운동 유네스코등재추진위원회 위원, 동북아상품거래소 광주유치조직위원회 위원,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조직위원회 위원, 포뮬러원국제자동차경주대회 조직위원회 위원 |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는 것 자체를 대부분 만류했죠. 특히 저를 아끼는 지인들일수록 단 한 사람 예외도 없이 말렸어요.” 이 의원은 출마 선언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무소속 출마를 조언하기도 했다. 당선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그건 아니다”고 그는 잘랐다. 4년짜리 금배지에 눈이 어두워 정치를 배웠고 국회의원까지 지낸 한나라당을 떠날 수 없다는 그의 신념이 용서치 않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광주 밖에서 출마하는 것은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황색 돌풍에서도, 탄핵 정국 속에서도 광주에서 출마했습니다. 한나라당 때문에 무조건 안 된다는 생각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며 ‘무모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호남 국회의원이 31명인데 여당의 당정회의에 참석할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300조원이 넘는 예산을 심의할 때 절박한 지역 현실을 대변하고 호소할 사람이 없다는 건 호남 발전에도 큰 손해죠.” 그는 이제 호남 지역민도 ‘줄 것(국회의원)은 주고, 받을 것은 당당하게 받는(예산)’ 수지맞는 투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모한 도전에 나선 그를 지역의 밑바닥 민심은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이 의원은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당이 아닌 사람을 보고 선택하겠다는 민심이 무르익었단다. “과거 광주가 94%, 95%로 뭉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 해결됐고, 민주당에 대한 피로감과 견제심리도 느껴집니다. 지난 광주 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3위를 차지하고, 또 한나라당 후보들이 지방선거에서 35만표를 얻는 등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넘어야 할 ‘반(反)한나라당 정서’라는 산은 여전히 높다. 뿌리 깊은 호남에 대한 인사 차별, 지역 홀대 정서가 만든 비(非)한나라당 정서는 한나라당 소속인 그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걸림돌이라는 뜻이다.
산을 넘을 해법은 가지고 있을까. 이 의원은 ‘현실’에서 답을 찾는다. 과거 이야기, 지역감정의 배경에서 답을 찾는 것은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논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것이 정도인지, 공평인지, 탕평인지 하는 부분을 봐야 합니다. 짧은 민주주의 역사와 헌정에 다수 문제점은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시점입니다.”
한나라당이 먼저 호남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게 이 의원의 강한 소신이다. 이 의원은 “호남을 외면하면 호남만 아픈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아프다는 점을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깨달아야 하는데 아직 부족한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라면서 “한나라당은 호남이 변하길 기다리지만 말고, 먼저 호남을 향해 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고서에만 의존하고 이벤트에만 치중하는 태도, 또 호남에서 패배를 ‘커다란 우리 몸속 작은 장기 하나의 말썽’으로만 여기며 당연시하는 태도는 이제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당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그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그대로 나타났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건 당선이 목표입니다. 두자릿수 득표율로는 더이상 만족하지 않습니다. 또 석패율에도 의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역 예산 확보를 위해 동료 의원 집 앞에서 새벽 두 시에 벽에 기대 잠들었던 정성이라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광주 시민들도 성의를 받아줄 것입니다.”
그는 광주 출마의 각오를 ‘6고’로 요약했다. “호남에서 태어났고, 누구보다 호남을 잘 알고, 호남을 사랑하고, 또 호남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열정이 있고, 또 일을 해왔고, 앞으로도 일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게 그가 광주에서 출마한, 또 광주에서 그가 당선돼야 할 6가지 이유, 즉 ‘6고’인 셈이다.
광주 출신으로, 한나라당에서 보낸 29년은 그에게 인고의 세월이었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 회상 속에는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히고, 비주류로 소외받은 오랜 세월 끝에 이뤄낸 자부심도 동시에 묻어 있었다. 이 의원은 “천신만고 끝에 국회의원이 됐고, 또 지난 3년 동안 그토록 하고 싶었던 지역을 대변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것에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네요”라며 웃었다.
최정호ㆍ양대근 기자/choijh@heraldcorp.com
사진=양동출 기자/dcy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