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이 무슨 홍두깨 같은 소리인가. 총선을 반년 앞둔 국정감사 시즌을 맞아 국회의원들은 저마다 한번 튀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의원 개개인이야 총선 때 공천받고 승리까지 하고 싶겠지만, 당으로선 집권의 최종목표인 대통령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총선 압승이 그리 달갑지 않다. 최근 30년간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총선에서 이기면 대선에서 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1등만 기억하는 사회’라는 울분 섞인 개그가 주목을 받은 적도 있지만, 우리의 유권자들은 ‘항쟁 민주주의, 1987년 체제’ 이후 정치권 심판에 관한 한 ‘1등에 대한 저주’를 잊지 않고 행사했다. 1등만 기억하는 사회에 대한 화풀이를 정치권에다 대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6, 8개월이라는 짧은 간격을 두고 벌어지는 10월 서울시장 보선-내년 4월 총선-12월 대선 국면에서도 이 ‘반전드라마’는 계속될까. 반전보다는 관성이 작용하지는 않을까.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운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221석이던 민자당은 2년 뒤 치러진 14대 총선에서 무려 72석을 잃고 과반도 달성하지 못했지만, ‘문민시대의 개막’이라는 기치를 들고 나온 김영삼을 내세워 대권을 거머쥔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는 민자당 대세론과 자민련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79석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냈다. 하지만 1년 뒤 치러진 대선에서는 김대중의 승리를 일궈냈다. 역사상 첫 정권교체.
양김 정권 집권기엔 모두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가 터졌다. 직계나 측근이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권력이 주는 ‘달콤한 악과(惡果)’를 무분별하게 받아먹는 행위는 승리한 세력들이 통상 노출하는 오만과 방심의 단면이다. 요즘 또 측근문제로 시끄럽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예상을 뒤엎고 승리한다. 첫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내고 ‘대중경제론’을 설파한 DJ에게 기대가 컸던 만큼 ‘옷로비 사건’ 등 실망스런 모습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DJ측근의 비리 의혹과 레임덕이 2002년 16대 대선의 핵심재료로 등장했지만, 노무현은 ‘3김청산 새 정치’를 기치로 돌풍을 일으킨다.
‘지면 이긴다’는 얘기는 2004~2007년 노무현식 ‘새 정치판’에서도 이어졌다. 2년 뒤 총선에서 집권 열린우리당은 ‘탄핵돌이’의 대거 입성으로 19년 만에 과반수 여당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은 몰아준 직후엔 서슬퍼런 감시의 눈을 번득였다. 집권세력의 잇단 국정운영의 잡음속에 이명박 후보는 ‘경제 올인’을 기치로 대권을 차지한다. 한나라당 입장에선 ‘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총선에서 지면 대선에서 이기는 징크스의 원인과 변수에 대해 전문가들은 ▷‘반작용과 균형심리’ ▷승자의 오만과 패자의 겸손 ▷총선-대선 간의 시차 ▷두 선거의 본질적인 성격차 ▷내분 혹은 결집 등을 5대 요인으로 든다. 제3후보의 등장과 영향력도 총선승리의 관성을 이어가지 못하게 하는 변수이다.
고성국 박사(정치평론가)는 총선-대선 결과가 엇갈리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집권세력을 견제하려는 우리 국민의 균형감각”을 들었다. 고 박사는 “집권세력이 조금만 못해도 우리 국민은 강한 견제심리를 발동하고 균형을 찾으려 한다. 절대 특정 정파에 몰아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나라당의 유래없는 압승이라던 18대 총선에서도 국민은 180석에 달하는 범여권 의석 속에 ‘야당보다 더 무서운 친박’을 60~70석 끼워넣어 이른바 실세들의 독주를 막았다.
한국정치는 항쟁에 의한 민주주의의 런칭(launching)으로 불리는 ‘1987년 체제’ 정립후 줄곧 여소야대를 유지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에게 의석을 많이 주지 않는 여소야대는 민주주의 국가의 정상적인 현상”이라면서 “집권을 하게 되면 갈등을 조정한답시고 이쪽 저쪽 말을 어정쩡하게 듣다가 양쪽 모두에게 욕을 먹는데, 줏대없이 어정쩡한 정책노선을 견지하는 과욕 역시 역전패의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승리를 거둔 집권세력, 다수당의 오만은 철저하게 역풍을 맞는다. 양김 아들들의 호가호위가 그랬고, 행정부와 의회권력 모두를 장악했던 노무현과 이명박 정권은 재보선-지방선거에서 연전연패했다. 17대 총선때 초강력 탄핵 역풍에다 ‘차떼기당’ 오명에도 한나라당이 121석을 지켜낸 배경에는 천막당사 등 겸손함을 국민앞에 보인 점도 작용했다.
총선과 대선 간의 시차도 무시 못할 변수다. 대부분의 경우 총선과 대선 결과가 엇갈렸다. 총선~대선 간의 시차가 1년8개월~3년8개월이면 어김없이 다수당 집권세력이 갈렸다. 하지만 4~8개월은 달랐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은 “총선-대선 결과가 일률적으로 엇갈린다고 볼 수 없다. 8개월의 시차를 보인 14대 총선-14대 대선, 넉달만에 치러진 17대 대선-18대 총선에서는 지지세의 관성이 유지됐다”면서 “기간이 짧으면 그만큼 유권자의 태도가 변화할 여유도 없고, 허니문이라고도 하는 초반엔 어느 정도 관망할 시간을 주자는 심리가 작용한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총선은 정권 심판의 성격이 강하고, 대선은 미래를 보고 투표하는 경향이 짙다”면서 “대선은 후보가 누구냐에 영향을 많이 받고, 시대정신이 크게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특정 정파의 내부갈등 여부도 총선과는 다른 대선 결과를 초래할 변수로 지목됐다. 1992년 총선에서 민자당이 과반수에 1석 모자라는 제1당이 되자, 민자당은 무소속과 야당의원 영입에 나서 과반수를 손쉽게 획득했고 이는 YS당선의 밑거름이 됐다. 15대 대선에서는 이회창-이인제의 분열, YS에 대한 이회창의 고강도 비판에 따른 당ㆍ청갈등이 김대중의 승리를 가져왔다는 분석도 있다.
이 밖에 제3의 후보가 어느 정도 표심을 가져갈 것이냐도 총선과는 다른 대선 결과를 낳을 수 있는데, 김대중은 14대 대선에서 정주영 박찬종에게 23%나 가도록 내버려두면서 패퇴했고, 노무현은 제3후보로의 누수를 최소화해 이회창과의 양강구도를 정립함으로써 노풍이 제대로 먹힐 통로를 뚫었다.
그럼 총선을 ‘적당히’ 이기거나 진 다음엔 어떻게 대선을 준비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2012년판 총선-대선 결과는 엇갈리지도 않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신율교수는 “오는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내년 4월 총선을 연승할 경우 내년 12월대선까지 지지세의 관성이 유지될 가능성이 있는 이유는 시차가 짧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교수도 “2012 총선-대선과 가장 흡사한 것이 1992년인데, 1992년은 관성이 유지됐다고 볼 수도 있다”면서 “현재 국면상 다소 유리한 것으로 관측되는 야당이 어떻게 하고, 어떤 후보를 내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진단했다. 대선은 후보자질, 시대정신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고성국 박사는 총선에서 여당이 이기면 ‘박근혜 대세론’이 굳어지고, 야당이 이기면 대선은 ‘모르는 게임’이 된다고 진단했다. 정권을 한 번씩 주고 받아보았기 때문에 2012 대선은 ‘1987년체제’를 종식시키고 새 체제를 수립할 것이며, 보혁을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적 가치’라는 시대정신을 잘 받드는 인물이 승자가 될 것으로 고 박사는 내다봤다.
총선을 이겼음에도 대선에서 지지 않을 덕목은 무엇보다도 겸양이라는데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이겼다고 밀어붙이기로 나가는 순간, 대선 패배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는 것이다.
<함영훈 선임기자 @hamch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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