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야권통합후보
유신 시위 참여로 서울대 제적검사 1년만에 인권변호사 변신
혹독한 검증속 지지율 고수 관건
박원순 변호사가 결국 오는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권 통합후보로 나서게 됐다. 그는 안철수라는 바람(風)으로 제도 정치권으로 들어왔지만, 변화를 원하는 바람(願)으로 민주당의 조직력을 뚫고 통합 후보로 선출됐다.
3일 서울 국민참여경선에 나온 한 민주당원은 “당원이지만 당의 변화를 위해 박원순을 찍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기대하는 바람과 극복해야 할 과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시골 출신 인권변호사=박원순은 시민사회운동의 역사이며 아이콘이다. 하지만 시민사회운동가로 활동하기까지 그는 상당히 굴곡진 인생역정을 갖고 있다. 그는 이른바 ‘KS(경기고-서울대)’ 출신이지만 그의 어린시절은 꽤 가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남 창녕군 출신으로 중학교 때까지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다. 당초 경복고에 입학하려 했으나 입시에서 떨어진 후 1년간 재수 끝에 경기고에 입학, 이후 서울대 사회계열에도 합격한다. 하지만 대학 시절 그 역시 유신시절 시위 참여를 이유로 1학년 때 제적을 당하기에 이른다.
단국대로 재입학한 그는 졸업 전인 1980년 사시 22회에 합격, 대구지검 검사로 근무했다. 1년 만에 옷을 벗은 그는 인권변호사로 나선다. “사형집행 참관이 싫었다”는 이유에서 알 수 있듯 그의 반골 기질은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거부하고 시민운동으로 그를 이끌었다. 권인숙 성고문 사건, 미국문화원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말지(誌) 보도지침 사건 등 1980~90년대 주요한 시국사건의 변론을 통해 세상은 박원순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박원순(오른쪽) 후보가 어머니와 찍은 사진. |
▶‘박원순=시민사회 운동’=참여연대를 빼놓고 박원순을 설명하긴 어렵다. 그가 시민단체 결성을 마음먹게 된 데는 진보진영의 분열과 패배가 가장 큰 이유였다. 1987년 김영삼ㆍ김대중 당시 진보진영의 분열로 대선에서 패배하는 광경을 목격한 후 1991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와 참여연대 창립에 일조한다. 참여연대 시절 그는 1인 시위 등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기도 한다. 이후 총선 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그가 적극적인 정치행위를 한 계기가 된다.
1998년 미국체류 기간 중 기부문화에 대해 눈을 뜬 그는 참여연대를 떠나 아름다운재단을 설립, 사회공헌활동에 주력한다. 당시 그는 이명박ㆍ오세훈 서울시장과 공동사업을 벌이기도 했고, 기업의 기부를 독려하기 위해 기업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그가 아름다운재단을 운영하며 기업으로부터 기부받은 돈은 무려 140억원이 넘는다. 그의 사업수완을 보여주는 단면이지만, 대기업을 비판하면서 기부를 받는다는 점은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정치신인, 안풍도 극복해야 할 한계=사실 그는 참여연대 시절부터 상당히 정치적인 이슈에 발을 담그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정치적 명함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행위가 정치적이었다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볼 때 서울시장 선거 출마가 그의 정계 입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그를 제도 정치로 이끈 셈이 된다. 이는 그의 한계로도 지적된다. 안 원장의 지지를 통해 그는 한자릿수에 불과하던 여론 지지율을 40%대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박 후보는 오 전 시장의 전시성 토건행정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양화대교 개선 공사 유지 혹은 한강보 철거 문제 등 각론 부분에서는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또 시민사회운동을 통해 다져진 급진적인 진보 성향이 안 원장의 중도지지층과 화학적 결합을 하는 것 역시 선거운동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검증의 험난한 과정 속에서 지지율이 계속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시민운동가로 살면서 그는 검증 공세를 받아본 적이 없다. 여권에서는 청문회 수준의 검증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그의 도덕적 이미지가 상처가 난다면 지지율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 등 기존 정치권의 조직력에 의존해야 하는 것 역시 딜레마다. 그의 지지층 중에는 기존 정당을 거부하며 변화해달라는 여론 역시 만만찮다.
박정민 기자/boh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