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대장정서 4·27재보선까지 위기마다 승부사 기질 발휘…민주당 혁신 주체로의 변신 시사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사퇴 카드를 꺼내들었다. 당의 만류에도 사퇴 번복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60년 전통의 제1야당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시민사회 진영의 박원순 후보에게 내준 책임을 진다는 이유에서다. 손 대표는 짧은 시간 속에서 정치적 부침을 극심하게 겪은 몇 안되는 정치인이다. 그런 만큼 그의 정치인생은 승부수의 연속이었다. 손 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정계에 입문해 장관, 도지사 등을 거치며 단시간에 유력 대선 후보로 부상했다. ‘합리적 보수’를 표방한 그가 대선을 목표로 한 이후부터 번번히 위기를 겪었다.
2006년 6월 30일 경기도지사를 마친 직후 그는 대권행보 대신 100일간 홀로 민생대장정에 나서는 돌발행동을 감행했다.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는 효과는 있었지만 이명박ㆍ박근혜 두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양강구도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듬 해 3월에는 한나라당을 탈당, 민주당으로 전향을 시도한다.
그의 승부수는 계속 이어진다. 18대 총선에서는 대표 자격으로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출마하는 배수진을 쳤지만 패배한다. 하지만 지난해 10ㆍ3 전당대회에서 그는 조직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당대표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또 지난 4ㆍ27 재보선에서는 여당 텃밭 분당에 출마해 강재섭 한나라당 전 대표에게 승리했다.
이쯤 되면 승부사 기질이 몸에 익는다. 그런 그에게 ‘서울시장 선거 불임정당’이라는 위기가 또다시 찾아왔다. 야권 승리에 총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은 무책임한 돌발행위라는 당내 지적도 만만찮다. 그의 선택을 지극히 개인적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분명 손 대표가 사퇴 카드를 통해 얻는 효과도 적지 않다. 민주당 변화의 초점을 자신에게 맞춰 당을 혁신하는 주체로 서겠다는 뜻이 분명해 보인다. 백의종군을 통해 박원순 통합후보를 당선시키는 역량을 발휘할 경우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서 입지를 더욱 공고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손 대표가 승부를 걸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 가지로 귀결되는 듯하다. 그는 이번 경선을 통해 자신의 우군으로 불리던 중도개혁층이 정당이 아닌 시민사회 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변화를 보여주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걸 직감한 것이다. 사즉생(死卽生)카드가 먹힐지에 대해선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승부사 손 대표도 이번 만큼은 도박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박정민 기자/boh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