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복원사업 팔걷은 박영춘·박소연 부녀…‘시간·국경 초월한 조형미’ 한국적 디자인 세계화 포부
“中·日전통화보다 회화적으로 한수위화폭엔 민초들의 바람 고스란히
복원사업 과거 살리고 미래 만드는일”
박물관·개인 직접 찾아가 대중화 설득
전문가가 완벽모사…원본느낌 살려
상품에 복원작품 접목 ‘멀티유즈’ 전략
“수많은 민화 작품이 일본 수집가들에게 넘어갔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이 이를 잊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박영춘〈오른쪽〉 비핸즈 회장이 돈이 되지 않는 민화 복원을 결심한 이유다. 조선시대 이후 일제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민화는 단절되었다. 세상이 변화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전했을 민화가 식민지 시기 36년 동안 단절되고 그 후 서구화된 생활로 그 본모습조차 잊혀진 존재가 된 현실이 안타까웠다. 비핸즈는 카드나 청첩장 등을 만드는 기업이다. 옛날 이름은 바른손카드다.
“중국이나 일본의 전통화보다 회화적으로 아름답고 백성의 삶이 묻어나는 생활의 결과물이라 더 가치있다”고 박 회장은 한국 민화의 매력에 대해 설명했다.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는 선경도(仙境圖), 부부의 영원한 사랑을 기원하는 화조도(花鳥圖), 합격 및 승진과 성공 등을 기원하는 책거리 등 백성들이 삶의 안녕과 복을 비는 기복신앙이 담긴 작품이 많다. 당시 민초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생활했는지 알 수 있는 역사적 자료기도 하다.
딸 박소연〈왼쪽〉 부회장도 아버지를 따라 민화 복원에 푹 빠져있다. 전시회마다 따라다니고 틈틈이 자료도 모으면서 민화에 대한 지식과 식견을 넓히자 점차 최종적인 감수작업을 제외한 실무를 맡겼다. 박 부회장은 특히 다양한 화조도를 좋아한다. 화폭에 가득히 담긴 아름다운 꽃과 새를 통해 번영과 부귀, 행복을 기원하는 바람이 더욱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 회장 부녀가 민화의 가치를 깨닫고 보급에 나섰지만 대중화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무엇보다 민화를 소장한 민화미술관, 개인소장가들이 소장한 민화의 경우 책을 제작하는 경우 외에는 좀처럼 원화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만큼 민화의 대중화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비핸즈가 복원 과정에서 가장 애를 먹은 것도 개인 소장자나 박물관이 원화를 공개하도록 설득하는 일이었다.
판화 공방에서 고서에 실려 있거나 박물관, 개인이 소장한 민화 중 가치가 있는 작품을 선별해 상품 아이템으로 개발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원화가 일본으로 넘어가서 우리나라에서 소장하고 있지 않거나 훼손이 심한 작품을 우선 선정한다. 이미 복원된 작품과 관련된 작품을 연이어 복원하는 것도 중요한다. “민화는 대부분 여러 개의 개별 작품을 이어붙이면 더 아름다운 작품이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것이 박 부회장의 설명.
대부분 원본을 직접 구하기는 어렵고 원화의 사진을 찍거나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이미지 자료를 토대로 숙련된 미술가가 모사를 한다. 그 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도록 2차 작업을 거친 후 전문가로부터 원본을 훼손하지 않았는지 고증을 거친다. 여기서 통과하지 못한 작품은 과감히 버린다. “복원 작품이기 때문에 더욱 완벽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박 회장의 지론이다. 그래야 누구에게나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은 민화를 모사해서 그린다고 “가짜가 아니냐”라고 보는 시선들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개의치 않는다. “회화는 감상의 대상이지 진품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진품만 감동이 있다는 생각은 편견”이라고 답한다.
“한국의 민화는 그 감각이 현대적이고 회화성이 우수해요. 몇 백년이 지난 지금도 디자인적으로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박 부회장은 민화 복원 사업이 “과거를 되살리는 일인 동시에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민화는 ‘세월과 국경을 초월한 조형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직 민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적지만 디자인 관련 업계에선 민화를 새로운 디자인 요소로 보고 있다. 비핸즈는 복원된 민화를 가구나 다양한 소품에 입혀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원소스 멀티유즈’ 전략을 모색 중이다.
박 부회장은 “디자인으로 성장한 비핸즈가 한국의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로 보고 있다”며 민화의 현대화와 세계화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지난 3월 말 인수한 그림 유통 온라인 페이지 ‘그림닷컴’(www.gurim.com)을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로 민화를 널리 보급할 계획이다. 미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한류 바람을 기대하고 있다.
비핸즈는 민화의 아름다움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 최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복을 부르는 민화’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복을 부르는 민화’라는 테마에 맞춰 민화마다 담고 있는 의미를 보고 느낄 수 있어 좋았다는 반응이었다. 주로 30~40대 이상 여성 고객들에게 반응이 매우 좋았다. 보름의 행사기간 중 민화 판매 매출은 1500만원대에 이른다. 김병두 비핸즈 대표이사는 “우리 민화의 대중화 가능성 및 시장 반응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좋은 행사였다. 앞으로도 좋은 콘텐츠로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작품을 가까이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화가 비핸즈에서 처음으로 보급한 미술 작품은 아니다. “미술을 포함한 예술 문화 대중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평소 신념을 가진 박 회장은 ‘그림은 비싸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회사 내에 판화 공방을 두고 원화의 10분의 1 가격에 명화를 보급해왔다. 유화의 질감을 그대로 재현한 ‘마티에르 기법’도 도입했다. 실제 그림을 3D 매핑 과정을 거쳐 미세한 조각을 한 뒤 컬러로 인쇄한다. 제한된 숫자를 생산하면서 원작자가 직접 자신의 작품임을 인증하는 ‘에디션 사인’까지 넣어 품질을 인정받았다. 비핸즈는 미술작품 보급뿐 아니라 예술계 지원도 고려하고 있다. 김병두 대표는 “지금은 ‘미술을 하면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며 “여력이 닿는 대로 전통 문화를 계승하는 예술가들이 걱정없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이들을 지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원호연 기자/why3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