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북지역 최대 도시이자 랴오닝성(遼寧省)의 성도인 선양(瀋陽)은 194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봉천(奉天)으로 불리웠다. 선양시 북부 교외에 류타오거우(柳條溝, 류타오호우ㆍ柳條湖)라고 불리는 호수가 있는데, 이곳이 일제의 중국 침략 신호탄이 된 만주사변이 발생한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81년 전인 1931년 9월 18일 밤, 류타오거우의 남만주철도 선로가 폭파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1905년 러ㆍ일전쟁 후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이 중국 군벌의 진출과 러시아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벌인 사건이었다. 일본은 이를 군벌 장쉐랑(張學良)의 소행이라고 덮어씌우고, 철도보호를 명목으로 군벌 주둔지를 기습하면서 군사행동에 들어갔다.
중국인들은 이날을 국치일로 여긴다. 실제로 이를 기점으로 일제의 중국 침략은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만주 전역을 무력으로 장악한 일제는 바로 이듬해인 1932년 3월 1일 청나라의 폐황제 푸이(溥儀)를 앞세워 만주국을 수립했다. 본격적인 파시즘 체제로 들어선 일본은 1937년에 중ㆍ일전쟁을 일으키며 중국과 동남아까지 침략했고 1941년에는 진주만을 공격했다.
만주사변 발발일을 맞아 중국 100여개 도시에서 최대규모의 반일시위가 벌어졌다. 이 시위에는 항일투쟁 지도자이자 중국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毛澤東)의 사진까지 등장했다. 양국이 영토분쟁을 빚고 있는 센카쿠(尖閣) 열도에서의 군사적 충돌 우려까지 커지면서 중국인들의 반일감정이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갈등의 배후엔 과거 침략사에 대한 일본의 그릇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이 과거 침략사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동북아의 안정은 요원한 것이다.
이해준 선임기자/hj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