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문재인과 안철수 두 승부수가 대통령직을 걸고 ‘러시안 룰렛’ 테이블에 앉았다. 한 사람은 18대 대선 결승전에 나설 수 있다. 그리고 한쪽은 승자의 팔(가치연합 및 공동정부 구성 동참)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승부는 한번 뿐이다. 무언유언의 조언자로만 남을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둘중 한사람이 테이블을 걷어찰 가능성도 여전히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건너온 다리는 불을 사르는" 승부사로 통한다. 한 사람은 인권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또 한 사람은 의사에서 CEO, 교수로 너무나 다른 길을 걸었지만, 생(生)을 모두 걸어야 할 때 이를 외면치 않았다. 두 사람을 한날 한시 ‘담판장’에 모이게 만든 것도 ‘다 걸때’를 안다는 양측의 공통점 탓이다. ‘끝판 대장’은 외나무 다리서 만나기 마련이다.
안 후보는 지난 5일 문 후보에게 ‘꼿꼿한’ 단일화 원칙과 함께 ‘양자 회동’을 제안했다. △기득권 세력을 이길 수 있는 △가치와 철학이 하나가 되는 △미래를 바꾸는 단일화가 3대 대전제로 깔렸다. ‘게임의 룰’ 같은 방법상의 문제에 앞서 야권 단일화의 명분에 의제를 던지는 동시에 주도권을 쥐고 가겠다는 안 후보의 승부사 기질이 다시 한번 발휘된 순간이다.
지난 2일 제주도에서 민주당의 4ㆍ11총선 악몽을 꺼낸 것도 주도권을 쥐기 위한 포석이었던 셈이다. 안 후보의 지난 9월 대선 출마변은 지난 4ㆍ11 총선에서의 야권 패배를 이유로 들었던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 것이다.
‘야권연대 필승론’에 함몰된 야권의 실기(失機)를 이유로 ‘기득권 세력을 이겨야 한다’는 분명한 원칙으로 다시 한 번 문 후보를 압박한 셈이다. 여기엔 각종 여론조사에서 다자구도의 경우에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 이어 2위를 지키고 있고, 무엇보다 야권단일화 측면에선 본선 경쟁력에 있어 문 후보를 여유롭게 따돌리고 있다는 점도 안 후보가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명분이 되고 있다. 여기엔 ‘새로운 정치, 새로운 미래’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도 한 몫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문 후보가 호락호락 넘어갈 수도 없다. 정권 교체를 위해선 단일화가 필요하다며 “유리한 시기와 방법을 고집하지 않겠다. 모든 방안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논의를 시작하자”고 한 것도 사실 문 후보가 선두에 섰었다. ‘안철수에 당했다’,‘그쪽 전략가가 누구냐’는 당내 일각의 탄식도 개념치 않겠다는 의지도 읽힌다.
그가 안 후보와의 단독 회동에 나서기 전에 당내 쇄신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정치쇄신안 종합판을 내놓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면서도 안 후보와 당내 쇄신파가 주장하고 있는 지도부 퇴진에는 “나에게 맡겨달라”며 끌려 다니지 않는 단호함도 보였다.
그가 호락호락 물러설 수 없는 이유도 있다. 본선 경쟁력에선 안 후보에 뒤지지만, 야권단일화 적합도를 묻는 항목에선 단연 문 후보가 돋보인다. 이 뿐 아니라 최근 한국정당학회가 조사한 리더십 평가 5개 항목에서도 모두 문 후보가 높은 점수로 1위를 차지했다. 의사소통능력ㆍ국정운영능력ㆍ위기관리능력ㆍ정치력ㆍ비전제시능력 등에서 모두 안 후보를 앞서고 있는 만큼 현재의 본선 경쟁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룰렛’판은 돌기 시작했다. 건곤일척의 승부. 불과 2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정치는 안한다’던 정치신인 문 후보와, 잘나가는 서울대 출신 의사ㆍ성공한 벤처 사업가ㆍ서울대 교수에 이어 정치인으로까지 변신한 안 후보의 ‘독대’에서 누가 쓰러질 것인지에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승부’가 재미있는 것은 승자와 패자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