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조동석 기자]우리나라 역대 정권은 복지 확대를 추구했다. 표(票)를 위해서, 정권에 대한 저항을 희석시키기 위해서, 심화하는 양극화로 인해 거리에 나앉은 사람을 사회의 일원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그랬다.
복지 확대의 이유와 규모, 성격 등은 정권마다 다르더라도 공통점은 하나 나타난다. 둔화하는 성장률 앞에서 복지확대가 맥을 못춘 것이다. 재원을 확보하지 못해 선언에 그치는가 하면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 후퇴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성장률과 재정건전성은 복지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분석한다. 파이를 키워야 나눌 게 많아진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편성한 내년 복지 예산은 97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다. 그러나 체감도는 바닥이다. 내년에 ‘0~2세 전면 무상보육’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나서 복지 정책이 후퇴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로 불어닥친 저성장이 복지정책을 딜레마에 빠지게 만든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2006년 ‘비전2030-함께 가는 희망한국’ 보고서를 내놨다. 주요 내용은 2030년 1인당 국민소득 4만9000달러, 삶의 질 세계 10위, 복지분야 재정 비중 40% 등이다. 하지만 1100조원에 달하는 재원 마련 방안이 없어, 선언에만 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당시 한국은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체감경기가 바닥을 치는 현실에서 국민들은 경기회복과 서민경제 안정을 원했다”고 평가했다. 국민적 성장 욕구가 분배와 형평을 후순위로 밀어낸 셈이다.
외환 위기의 와중에서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위기사회 안전망 구축을 적극 추진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자율과 적자생존 정책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도태된 약자들을 위한 생산적 복지를 추구했다. 대표적인 게 2000년 도입된 기초생활보장법. 그러나 갈수록 불어나는 복지제도의 특성을 간과한 나머지 재정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복지 의존증’도 심해졌다. DJ는 벤처와 가계부문을 통한 경기 부양을 시도했다. IT(정보기술)버블 붕괴와 카드대란으로 결국 서민과 약자를 배려하려던 DJ노믹스는 발휘하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의 금융실명제를 통한 ‘분배 정의’는 높은 임금과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고비용 구조가 경제 압박하고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ㆍ미국의 보호주의 심화 등 악화한 경제여건에 묻히고 말았다.
노태우 정부는 민주화 이후 사회 각 분야의 욕구가 분출함에 따라 안정 성장과 복지의 균형을 추구했다. 하지만 80년대 초반의 3저(저금리ㆍ저유가ㆍ저달러)에 따른 호황이 끝나고 경기후퇴 국면에서 들어서면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이 구상은 망가져 버렸다.
복지국가의 상징 국민연금이 경기변동과 궤와 같이한 것을 볼 때 성장과 복지는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1973년 박정희 정권은 국민복지연금법을 제정하지만 같은해 터진 1차 오일쇼크로 시행을 연기했다. 이 법률안은 1986년 국민연금법으로 부활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3저시대를 맞아 연 10% 이상의 고도성장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 대상 1순위로 전락한다. 김영삼 정권 때 개혁논의가 시작된 가운데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은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고쳤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때 불어닥친 외환위기, 카드대란 후폭풍에다 급속한 고령화는 복지 축소를 불러왔다.
dsch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