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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의원은 예산 깎자고 말 못한다" 철도맨에서 30년 국회 지킴이 주영진 예산정책처장
[헤럴드경제=조동석 기자]열차 기관사를 꿈꾸던 청년이 있었다. 대학 갈 형편이 안돼 그랬다고 한다. 이랬던 그가 어린 시절 매일 보던 철길을 뒤로 한 채 국회로 발길을 돌렸다.

주영진 4대 국회예산정책처장. 시베리아 대륙을 건너 유럽대륙으로 향하는 철마의 꿈을 접고 국회에 들어온 그는 주로 예산분야 일을 맡았다. 국가 자원의 적절한 배분을 통해 우리나라 재정운용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것이야말로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하는 것과 맞먹는 일.

그는 길게 말하지 않는다. 직원들과 밤새 만든 보고서로 말한다. 쓸데없는 곳에, 급하지 않는 곳에 예산이 쓰여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주 처장은 예산집행의 우선순위와 효율성을 강조한다.

“국회의원은 예산 깎자고 말하기 어렵다.” 철도맨에서 예산 지킴이가 된 주 처장을 깊어가는 가을, 국회 내 처장실에서 만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어요. 철길 옆에서 살았는데, 기관사 꿈을 키웠죠.” 주 처장은 철도고에 들어간다. 하지만 반년만에 사표를 던지고 학업의 길로 들어선다. 1981년 입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그래도 철도가 그리웠다.

주 처장은 해외에 갈 때마다 가능하면 기차를 한번씩 탄다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철도 운영 뿐만 아니라 시공이나 기술 등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죠.”

철도는 저탄소 교통수단. 그는 “아직도 철도보다 도로 부문의 예산이 더 많다. 녹색시대를 맞아 철도가 더 각광받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철도와 예산정책처장,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복합적으로 생각하면서 국가 예산의 총량과 우선순위에 대해 깨닫게 됐다.

주 처장의 야심작은 지난 6월에 나왔다. 2060년까지 장기국가재정을 전망한 보고서로, 우리나라에선 처음이다. 정부는 내년에 내놓는다.


예산정책처는 이 보고서에서 섬뜩한 주장을 펼친다. 지금 초등학생들이 경제활동에서 은퇴할 때면 우리나라 인구의 40% 정도가 65세 이상인, 우리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된다고 했다. 국민연금 고갈시기는 정부 예측보다 7년 앞선 2053년으로 내다봤다. 세수는 급감하는데, 먹여살릴 사람은 많아진다. 고령화의 재앙을 국가재정 전체 측면에서 경고한 셈이다.

주 처장은 “미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오늘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아직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 처장은 다급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그는 예산 제도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예산을 편성하고 국회가 심의하는데, 편성기간은 긴 반면 심의기간은 짧다. 60일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때 90일이었는데, 그때는 예산규모도 작고 기금심사도 없었다. 지금 65개 기금까지 심사하는데도 기간이 더 짧아진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재정 민주주의에서 예산법률주의가 빠진 점도 지적했다. 주 처장은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의회제도가 정착되면서 만들어진 것 중 하나가 ‘왕이 맘대로 걷고 맘대로 쓰지 말라’였다”면서 “우리나라는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으로 정하는 조세법률주의는 도입하면서 예산법률주의는 도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예산지출을 행정권의 작용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재정권한이 정부에 편중됐다는 것이다.

주 처장은 아울러 국회가 정부의 동의없이 예산 항목의 금액을 늘리거나 새로운 항목을 만들 수 없어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회계검사 기능의 국회 이관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상임위원회 전환 등도 개선점으로 꼽았다. 국회의 재정통제권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복지지출 확대에 대해 주 처장은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페이고’(PAYGOㆍPay As You Go) 원칙을 언급했다. 이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때 기존의 지출을 줄이거나 대책을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주 처장은 “(대선 후보들이) 복지 얘기를 많이 하는데, 복지 중 상당 부분이 의무지출(법으로 재정지출이 의무화된 것)”이라면서 “방향성은 옳더라도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재정건전성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양호하지만 외부 충격에 민감한 우리 경제 여건을 고려할 때 재정건건성 유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재정절벽도 걱정이라고 한다.

주 처장은 “예산정책처는 분석보고서를 통해 3조9000억원 감액을 제시했다”면서 “국회의원들은 감액 얘기를 못하는 측면이 있다. 고통스럽지만 (예산정책처에서) 감액 의견을 낼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예산정책처는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분석한다. 의원들이 우리 의견을 반영하는 편”이라면서 “예산정책처를 인정하고 신뢰하고 있다. 의원이나 정부, 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예산정책처의 의견을 새겨듣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의미다.


국회의 기능 강화와 관련, 그는 “국회가 자신의 예산을 늘리면 국민의 비난이 쏟아진다”면서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한 비용으로 봐야 한다. 국회에 예산이 더 투입됐을 때 다른 곳에서 비용이 얼마나 더 절감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국회와 국민을 의식해서 예산을 절감할 수 있고, 국회가 국정감사나 결산심의에서 문제점을 지적해야 정부가 다음부터라도 낭비요소를 없애고 과다편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주 처장은 “의회가 입법권이 있는데도, 보좌기구도 별로 없고 소속 직원도 적어 정부에게 입법 의향을 물어보기도 했다”며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소개한 뒤 “국회 기능 강화는 곧 국민의 권리 향상”이라고 했다.

dscho@heraldcorp.com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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