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자영 기자]오늘은 로또 1등 당첨금을 타러 가는 날. 월요일에 가려고 했는데, 연휴여서 오늘은 수요일이다. 운전대에 손을 얹었다. 떨리지도 흥분되지도 않았다. 가슴이 두근거려 운전을 못하는 것 아닐까 싶었는데 손은 능숙하게 핸들을 움직였다.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우리 집은 경기도 파주의 무너져내릴 것 같은 판잣집. 몸이 불편한 부모님과 미혼인 내가 함께 살고 있다.
나는 로또 477회 1등에 당첨돼 19억1901만원을 받게 됐다. 행운의 번호는 14, 25, 29, 32, 33, 45. 총 8명의 당첨자 중 직접 숫자를 선택한 사람은 나 뿐이다.
서울 중구 충정로1가 NH농협은행 본점에 도착했다. 주차장 안내요원에게 “로또 때문에 왔다”고 조심스레 말했더니 옆 건물로 가라고 일러준다.
옆 건물인 신관은 주차권을 뽑을 때부터 안내요원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는다. “당첨금 때문에 왔다” “몇 등이냐” “1등이다”는 짧은 대화가 오가고 건물 입구에 차를 세웠다. 검은 정장을 입은 보안요원이 다가와 용건을 확인하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얼마후 엘리베이터에서 직원 한 명이 내려와 인사를 건넸다.
그는 VIP 엘리베이터로 나를 안내하고 4층 버튼을 눌렀다(올해 5월부터 15층에 복권상담실을 따로 마련). 엘리베이터는 혼자 타야 한다고 했다. 농협 본관에 ‘죽치고 있다’고 소문이 무성하던 조직폭력배나 각종 복지단체 사람은 없었다. 이날 이후로도 개인정보 유출이 의심되는 사례는 없었다.
문이 열리자 흔한 사무실 풍경이 나타났다. 직원 수십명이 칸막이에 둘러싸여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중나온 직원과 함께 복도를 따라 작은 방에 도착했다. 소파 하나, 책상 하나. 조촐했다.
당첨금 지급 담당자가 문을 두드렸다. 신분증과 로또복권을 확인하고 당첨 확약서를 작성했다. “농협 통장이 있느냐” “없다” “입금해드리겠다”고 했다. 당첨금 19억원에서 33%의 세금을 떼고 13억1873만8269원이 선명히 찍힌 새 통장이 내 손에 쥐어졌다.
체크카드도 발급받았다. 스스로 절제하지 못할까 무서워 신용카드 발급은 미뤘다.
담당자가 “자금운용에 대한 특별한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하자 “PB(프라이빗뱅커)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다. NH PB센터에 등록하고 포트폴리오를 추천받았다. 정기예금에 넣어두면 월 이자만 200만원 가까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뒤로도 NH농협 PB와 지속적인 연락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PB를 통해 노후연금으로 3억원을 묶어두고, NH를 통해 2억5000만원짜리 적금을 붓기로 했다.
당첨 확인과 당첨금 지급, NH의 상담까지 모든 절차가 끝났다. 담당자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자리를 떠났다. 수많은 로또 당첨자를 지켜봐왔을 그가 “주변에 알리지 말라”고 했던 조언이 기억에 남는다. NH 측의 마지막 말은 “행복하세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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