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붕괴는 곧 양극화 심화…납세·소비 주축 중산층 복원 시대의 화두로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이 물음에 “그렇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980년대 중반 유례 없는 3低(저유가ㆍ저금리ㆍ저달러) 호황을 누리고, 1980년대 후반 경기침체를 슬기롭게 극복한 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을 때 우리는 선진국인 줄 알았다. 국민 상당수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보통사람’이 그들이었다.
‘마이 홈, 마이 카’ 행복을 누리던 중산층은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악몽을 겪었다. 수많은 가장이 직장을 잃었고 별다른 직업훈련도 없이 영세 자영업의 전쟁터로 뛰어들었다.
중산층은 이렇게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급속하게 진행된 한국경제의 고용창출력 저하, 비정규직 증가, 막대한 가계부채, 가난의 대물림 등은 중산층을 점점 허물어지게 했다. 그나마 빚 낼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빚으로 중산층의 소비를 지탱했다. 그러나 빚은 언젠가 터지게 마련. 부동산 가격 하락은 그들을 ‘푸어’ 집단으로 몰아넣었다.
한국 경제의 허리인 중산층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위로 올라가도 모자랄 판에 아래로 아래로 추락만 하고 있는 게 오늘날 대한민국 중산층의 슬픈 자화상이다. 올해는 상행선에 올라탄 중산층이 좀 더 늘어날까….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
각종 지표는 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98년 가처분소득 기준 중산층 비율은 69.6%. 2011년 이 비율은 64.0%로 하락했다. 지난해 8월 본지와 연구원의 여론조사에서 체감 중산층은 이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46.4%에 불과했다. 2008년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와 아직도 진행 중인 유로존 재정위기는 우리 국민에게 중산층이란 의식을 크게 저하시켰다.
중산층의 붕괴는 양극화와도 맥을 같이한다.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개선 기미가 안 보인다. 중산층이 줄고 상층과 하층이 커지는 ‘모래시계형’ 구조가 된 지 오래다. 중산층 복원은 지금 시대의 과제가 됐다.
MB정부에서 ‘중산층을 두텁게 서민을 따뜻하게’ 슬로건 아래 ‘휴먼 뉴딜’ 프로젝트를 추진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중산층은 납세와 소비의 주축”이라며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떨어지면 납세자에서 재정이 필요한 계층이 된다”고 말한다.
소비성향이 높은 중산층이 감소하면 내수 기반이 취약해져 경제의 안정성이 훼손된다. 저금리 시대인데도, 유동성이 넘쳐나는데도 내수가 위축된 게 중산층 붕괴에 기인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월가 점령 시위에서 나타났듯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결과를 불러온다. 또 저소득층으로 몰락한 중산층에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쓸 곳 많은 예산이 중산층 몰락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계층 속의 숨은 법칙’ 저자인 미국의 교육학자 루비 페인은 “빈곤층은 현재를 중시하지만 중산층은 앞날이 어떻게 될지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중산층은 미래를 먹고 산다는 의미다.
그러나 교육격차가 불러오는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해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게 우리 부모다. 여기에다 높은 주거비 부담, 소득대체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국민연금밖에 없는 노후를 생각하면 앞날은 우울하기만 하다.
전문가들은 소득을 늘리기 어렵다면 가계지출을 줄일 수 있는 정부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교육비 절감책, 금융지원을 통한 주거비 안정,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그것이다. 특히 사교육과 상관없는 수준 높은 교육은 양극화의 악순환을 단절하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영국은 은퇴 후 3년 동안 은퇴 전 소비를 할 수 있으면 중산층이라고 정의한다. 미국 워싱턴타임스는 ‘퇴근할 때 피자 한 판을 사거나, 영화를 보거나, 국제전화를 걸면서 돈을 쓸 때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11년 영국 옥스퍼드영어사전 편집진이 당시 올해의 단어로 ‘쥐어짜인 중산층(Squeezed middle)’을 선정했다. 짓눌린 우리네 삶을 압축하고 있다.
새 정부의 목표는 모든 국민이 ‘맛있게 밥을 먹었다’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국민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배부르게 먹었다’가 아니다.
조동석 기자/dsch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