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한국 대통령들은 집권 초 높은 지지율을 보이다 집권 말이되면 어김없이 지지율이 급락했다. 여당과 야당, 군부와 문민정부 가릴 것 없이 모두에 해당되는 일종의 ‘공식’이었다. 다수의 경우엔 재임중 있었던 대통령 주변인들의 비리가 불거지면서, 때로는 정책의 실패가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치는 상황이 반복됐다. 학계와 정치권에선 이같은 이유를 ‘단임제 대통령제’의 한계로 보고, ‘개헌’ 필요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측근 비리 치명타 = 측근 비리가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은 첫 문민정부였던 김영삼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97년 한보그룹이 부도사태를 맞았고, 이 과정에서 ‘소통령’으로 불리던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연루된 것이 확인됐다. 현철씨는 이 일로 구속됐고, 아버지 김 전 대통령은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1년여를 지내다 결국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1998년 정권을 잡은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동교동계 좌장이었던 권노갑 의원이 16대 총선 직전 기업체로부터 불법 정치 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면서 치명상을 입는다. 특히 정권말에 불거진 김 전 대통령 세아들의 잇따른 비리 혐의 구속은 결국 아버지 김 전 대통령이 “무엇이라 사과를 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며 국민앞에 머리를 숙이게 만든 원인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재임 기간 중에는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노무현의 ‘오른팔’ 이광재 전 강원지사, 그리고 안희정 현 충남지사가 줄줄이 정치자금을 받아 수사선상에 올랐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퇴임 이후 본격적으로 이뤄졌는데 지난 2009년 불거진 ‘박연차 게이트’ 사건은 노 전 대통령 서거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딸 정연씨의 외화밀반출 사건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중이다.
이명박 현 대통령 역시 집권 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친형 이상득 의원, ‘왕차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 등이 줄줄이 구속되거나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국정 지지율이 급락했다.
▷‘상고하저(上高下低)’ 지지율 = 역대 대통령들의 지지율은 임기초 정점을 찍었다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서서히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경우엔 취임 1년차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70%를 넘었지만 재임 기간 중 꾸준히 지지율이 하락, 집권 5년차 되는 시점에선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쓸쓸히 퇴장하는 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정권 말 대선이 치러지기도 전에 민자당의 유력 대선 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탈당 압박을 강하게 받는 등 맥빠진 모습을 보이면서 10% 초반대로 지지율이 떨어지기도 했다.
정권말 대통령들의 낮은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들의 ‘줄탈당’으로 이어졌다. 인기도 없고 힘도 빠져 선거에 도움이 안되는 ‘종이 호랑이’ 대통령에게 ‘탈당 압박’이 가해지는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92년 대선 3개월 전 민자당을, 김영삼 전 대통령은 97년 대선 한달 전 신한국당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을 7달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을, 노무현 전 대통령도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을 탈당해야 했다. 곧 퇴임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은 1987년 직선제 실시 이후 탈당하지 않은 첫 대통령으로 기록되게 됐다.
▷개헌논의 = 매 정권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지지율 하락을 막아보려는 시도도 꾸준히 있어 왔다. 바로 개헌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대선 선거기간 도중 ‘4년 중임제’ 개헌에 찬동한 바 있어 국회에서 논의되는 개헌 논의가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국회 여야 의원 70여명으로 구성된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은 지난 19일 첫 회의를 열고 새 정부 초기 개헌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있었던 개헌 논의는 여야가 개헌 필요성을 공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진전을 보지 못했다. 집권 중반 이후엔 ‘개헌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게 여야 의원들이 공통된 분석이다.
학계에서도 고질적인 ‘상고하저’ 형식의 단임제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권 말이 되면 어김없이 재연되는 ‘집권말 권력 누수현상(레임덕)’을 막기 위해선 ‘87년 체제’인 단임 대통령제를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동국대 김준석 교수는 “매 정권마다 반복되는 레임덕은 레임덕이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임을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선 ‘4년 중임제’ 개헌론이 중론인 가운데 ‘내각제’, ‘4년 연임제’ 등도 현 체제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홍석희 기자 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