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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 전창협> “나 국민 안할래?”
이유가 무엇이고,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새 정부의 혼란과 국민의 혼돈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대한민국 국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행복시대라는데, 안타깝다.





세금납부는 국민의 의무라고 말하는 구청직원에게 아버지가 가슴을 젖히며 흥분하면서 말한다. “그럼 나는 국민을 관두겠어.” 놀란 구청직원에게 “국민이기를 관두겠다고, 애초부터 원했던 일도 아니었으니까”라고 다시 한 번 쐐기를 박는다. 해외로 이주할 것이냐는 질문에 “여기 거주한 채로 국민이기를 관둘 거야”라고 말한다. 일본 사람이 반드시 일본 국민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강변하는 ‘이상한 아버지’. 오쿠다 히데오의 인기소설 ‘남쪽으로 튀어’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내뱉은 얘기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같은 제목의 한국 영화가 지난 설에 개봉돼 화제가 됐다. 일본 소설에선 주인공의 이상한 아버지가 프리랜서였지만 한국 영화에선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바뀌는 등 한국 상황에 맞게 각색됐지만 국민하기 싫어하는 대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기요금에 TV수신료가 부과되는데 항의해 TV를 던져 박살낸다. 국민연금을 내지 않겠다며 “그럼 나 이제부터 국민 안해”라고 말하는 등 한국식으로 살짝 바뀌었을 뿐이다. 주인공 최해갑 역시 국가로부터 탈출을 꿈꾸면서 남쪽으로 섬으로 ‘튄다’.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은 영화나 소설속 얘기다. 국가나 정부를 부정하는 아나키스트들의 꿈은 국가나 정부 개념이 확립된 근대 이후엔 유토피아에 불과하다. ‘남쪽으로 튀어’ 봤자 국가와 정부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나 국민 안할래?’란 말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어차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국적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수밖에 없다. 인류 대부분은 어느 나라의 국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 중 대한민국 국민이 되려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지에 큰 영향을 받는다. 기름이 펑펑 나는 중동의 어느 나라와, 빈곤에서 시달리고 내란이 끊이지 않은 아프리카에 태어난 사람들의 운명은 극과 극이다.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국민’으로 57번이나 언급했다. 다음이 ‘행복’으로 이 또한 20회나 거론했다. 새 정부의 슬로건이 ‘국민행복시대’이니 당연한 얘기다.

오늘(11일) 아침 세계 주요 언론사 헤드라인을 살펴봤다. 미국 언론은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죽음 이후와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갈등이 다뤄졌다. 유럽은 나이지리아 이슬람 과격단체에 외국인 피살소식이, 일본은 ‘3ㆍ11대지진’ 2년이 주요 기사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은 주요 뉴스로 자국의 경기회복도 다루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헤드라인만 보면 북한의 도발은 시간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 첫 국무회의가 보름 만인 오늘 열린다는 소식도 비중있게 처리돼 있다. 아울러 위급한 상황에서 국방장관 후보자를 임명할 경우 정치권의 파행과 반발이 예상된다는 분석기사도 나오고 있다. 물론 한국 사람들 모두가 알다시피 경제와 관련된 좋은 소식은 없다.

이유가 무엇이고,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새 정부의 혼란과 국민의 혼돈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대한민국 국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행복시대라는데, 안타깝다. 

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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