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입법 정보·여의도 인맥
국회 로비창구 ‘대관담당’ 적임
고액연봉+안정성 기업行 줄이어
개인 사적정보 유출 우려도 상존
보좌관 이직한 의원들 노심초사
지난 5월 초 ‘경제민주화 입법’과 관련해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던 날, 30대 중반의 정장을 입은 한 남성은 쉴 새 없이 회의장 주변을 서성거리며 전화 통화와 ‘주변 캐묻기’를 반복했다. 그는 공채 출신의 ‘S 그룹’ 소속 과장. 담당 업무는 ‘대관 업무’. 기사화되지 않은 ‘날것’의 조각 정보 하나라도 얻어내 회사에 10분이라도 먼저 알리기 위해 회사 측에서 파견한 인사다.
국회에선 낯익은 이 같은 풍속이 최근엔 변화하는 추세다. ‘경제민주화’ 입법이 가속화되면서 각 회사가 아예 ‘대관 업무’ 담당을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들로 줄줄이 채워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판ㆍ검사들이 퇴임 후에 받는 ‘전관예우’에 빗대어 ‘보좌관 전관예우’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보좌관 출신들이 국회 로비 창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P의원실에 근무했던 Y보좌관은 지난 27일부터 S그룹 계열사로 출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보좌관은 과거 10년 넘게 P의원과 동고동락했던 인사다. 그만큼 P의원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다. P의원은 이 보좌관의 이직에 강력히 반대 의사를 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같은 당 L의원실에 근무했던 L 보좌관도 이달 들어 S그룹으로 직장을 옮겼다. L보좌관은 지난 18대 국회에선 J 의원 보좌관을 지냈다. 민주당 지도부에 포함돼 있는 의원실에서 보좌관들의 대기업행 선택이 이달 들어서만 벌써 두 건이나 있었다.
새누리당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모 공기업은 최근 새누리당 한 유력 의원의 보좌관에게 대관 업무 담당으로 채용을 제안했고, 현재는 채용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같은 당 J 의원실에 있던 보좌관도 H 그룹 홍보대행사로 이직 진행이 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의원실에 근무했던 보좌관들이 최근 들어 대기업들로의 이직 또는 이직 제안이 줄을 잇는 까닭은 경제민주화 입법과 관련해 국회가 권력의 핵심에 서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오는 6월, 경제민주화 법안 등 모두 60여개 법안을 처리키로 했는데, 이 가운데엔 가맹점주의 횡포 근절을 골자로 한 ‘가맹 사업 거래 공정화법(프랜차이즈법)’과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특경가법 개정안’ 등이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기업들의 ‘목줄’을 잡고 있는 법안들이 상당수인 것이다. 이 때문에 국회의 입법 방향을 다각도로 체크, 사전에 대응 방안을 마련키 위해 국회 내 인맥 풀이 다양한 보좌관들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
보좌관들도 급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4급 보좌관의 경우 월 450만원가량을 받는다. 기업체로 옮겨갈 경우 여기에 적지 않은 ‘프리미엄 연봉’이 얹혀 지급되고, 정년 보장 등 직업안정성까지 확보되면 ‘만년 비정규직’인 보좌관들도 ‘기업행’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보좌관들이 빠져나간 국회의원들은 노심초사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씩에 걸쳐 각 의원에 대해 알고 있는 여러 사적인 정보가 보좌관들의 이직과 함께 고스란히 ‘남의 손’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한 의원은 이직 보좌관에게 전화로 “너 그쪽으로 가서 나 감옥 보내려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소위 ‘뼈 있는 농담’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문제는 대기업들이 국회를 로비 창구로 보고 있다는 점”이라며 “정부나 국회랑 소통을 강화할 게 아니라 법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석희ㆍ백웅기 기자/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