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공개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 오간 100쪽짜리 대화록 전문은 8쪽짜리 발췌본과 큰 차이가 있다. 전문에는 당시 대화 분위기와 배석자들이 대화에 참여했는지 등이 드러나 맥락이 이해가 되지만, 일부만을 떼서 발언들을 확인할 경우 정파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보고’라는 단어가 사용된 맥락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6자회담에 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전에 보고를 그렇게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쓰여져 있다. 그러나 전문 확인결과 노 전 대통령이 사용한 ‘보고’라는 단어는 김계관 부석 등 배석자들의 ‘보고’를 지칭한 것이었다. 이와 관련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은 최근 “양국 정상간 대화가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보고하는 형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서 위원장은 “내 말이 조금이라도 과장 됐다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서해 평화협력지대 설정과 관련 ‘NLL 포기 발언’이라는 부분에 대해선 ‘적극적 해석’이냐, ‘소극적 해석’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서해 평화지대를 만들어서 공동어로도 하고, 한강하구에 공동개발도 하고, 나아가서는 인천, 해주 전체를 엮어서 고동경제구역도 만들어서 통항도 맘대로 하게 하자”고 언급했는데 이에 대해 새누리당측은 ‘NLL 포기’ 발언이라 해석하고 있다. “NLL은 땅따먹기 하려 미국이 만든선”이라는 지난해 10월 정문헌 의원의 주장도 전문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발췌록은 누가 만든 것일까. 일단 국정원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발췌록이 처음 공개된 것은 국회 정보위원회가 국정원에 정상 대화록 열람을 요청한 이후다. 국정원은 전문(103페이지)과 발췌본(8페이지)을 만들어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제공했는데, 만든 이유에 대한 해석은 두가지다.
처음 발췌록을 공개했을 당시 국정원은 대화록을 ‘공공기록물’로 분류했는데 대화록 전문이 공개될 경우 국정원이 져야 할 수 있는 ‘위법’ 논란을 피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정치적 해석’과, 의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었다는 ‘실용적 해석’ 두가지 관측이다.
공공기록물을 ‘공개’할 경우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법조치 될 수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전문이 아닌 발췌본을 별도로 만들었다는 것이 ‘정치적 해석’이다. ‘실용적 해석’은 의원들은 해당 기록물을 열람할 때 펜이나 종이 등 그 어떤 기록물도 지참하지 못하게 했는데, 100페이지가 넘는 대화록을 일일이 확인하기에 시간이 부족할 수 있음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발췌본은 원본의 맥락을 확인할 수 있도록 ‘몇 페이지’에 기록돼 있는 부분이라 적시돼 있다.
그러나 발췌본은 노 대통령이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는듯한 발언들만 담았다. 누가, 왜 이런 발췌본을 만들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홍석희 기자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