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해서 우리 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 말은 선거중립의무 위반 논란을 일으켜 결국 헌정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로 이어졌다. 대통령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꼭 4년 후인 2008년, 이번엔 참여정부가 쌀 직불금 부정수령 명단을 은폐했다는 이유로 국회가 전직 대통령의 지정기록물을 열람했다.
역시 국회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있었다. 다시 4년 후인 2012년 대선 즈음에서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논란은 1년째 계속돼 2013년 7월 2일 다시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뭉쳐 망자(亡者)의 기록을 뒤지기로 했다.
국회 재적 ‘3분의 2’ 찬성은 헌법 개정에 필요한 의결정족수다. 노 전 대통령은 현직 때는 물론 퇴임 후에도 2차례나 국회로부터 최고 수준의 압박을 받았으니, 이쯤 되면 국회와는 악연임에 분명하다.
기록물과의 악연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과 쌀 직불금 외에도 2008년 8월 대통령기록물을 무단 반출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관실에 이관한 자료는 825만건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를 예상한 듯 재임 기간 중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나름 자물쇠를 채운다고 했는데, 똘똘 뭉친 국회 앞에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은 그저 침묵할 뿐이다.
만약 노 전 대통령이 생존해 있다면 이번 사태에 어떤 말을 했을까? 어설픈 추정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2008년 대통령지정기록물을 공개당했을 때 노 전 대통령 측의 공식 입장을 다시 떠올려본다.
“이 건과 관련하여 기록 공개가 두렵거나 곤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록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기 시작하면 누가 기록을 남기려 하겠는가. 국회의 의결이 기록문화의 싹을 자르는 결과가 될 것을 우려할 뿐이다.”
홍석희 기자/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