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부자(父子) 사이에도 나누지 못한다’는 격언이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과의 차별화에 나섰던 역대 정권의 모습에서 이 말은 확인된다. ‘친구’도 ‘동지’도 없었다. 새 권력은 지난 권력의 폐해를 드러내며 국민에 호소했다.
검찰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택과 가족에 대한 압수수색, 대대적인 기업 세무조사, 4대강감사 등을 들어 박근혜정부가 전 정권과 강력한 차별화에 나선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놨다.
1980년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부 시절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사면했다.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을 노렸던 박정희 시대가 끝났음을 알린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을 매우 아꼈던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은 1976년 청와대 경호실 차장보로 근무해 박근혜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다.
40년간 ‘친구 관계’를 유지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도 전 전 대통령 ‘지우기’를 피하지 못했다. 전 전 대통령은 백담사로 ‘귀양살이’를 가야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우리 이이는 국민들이 뽑아준 대통령이라 체육관에서 뽑힌 대통령과는 다르다”고까지 했다.
‘문민정부’를 내세웠던 김영삼 정부는 ‘하나회 척결’로 군사정권 시절의 종언을 알렸다. 또 5ㆍ18특별법을 제정해 12ㆍ12 쿠데타를 주도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정권 창출에 기여한 ‘3당 합당(민자+민주+공화)’에 얽매이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경제청문회를 진행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실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문민정부 경제라인이 대거 기소됐다.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사면 문제를 놓고도 냉기류가 흘렀다.
김대중 정부와 ‘동지 관계’였던 노무현 정부도 같은 길을 걸었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직후 대북송금 특검을 실시했다. 김 전 대통령의 최대 업적이었던 남북정상회담은 의미가 퇴색됐다. 박지원, 임동원, 이기호 등 김대중 정부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이명박 정부는 전직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전임자를 잘 모시는 전통을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할 때 봉하마을로 가져간 대통령기록물이 정치쟁점화되면서 측근들이 검찰에 불려나가기 시작했다. 태광실업에 대한 전방위 세무조사는 노 전 대통령의 발 밑을 파고 들었고, 민주정부들어 처음으로 전직대통령의 검찰 소환까지 이뤄졌다.
정권 재창출로 평가되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역시 긴장관계다. 이 전 대통령의 최대 치적 사업 ‘4대강 사업’에 대해 감사원이 “사실상 운하 사업”이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작업에도 그 어느 정부보다 적극적이다. 홍석희 기자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