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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함영훈> ‘서기제복(暑氣制伏)’…보양식이나 먹는 말복이 아니다
[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 ‘여름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 ‘삼복에 오는 손님은 호랑이 보다 더 무섭다.’

이런 속담이 있을 정도로 여름은 아주 오래전부터 경제활동 사회관계를 접는 ‘비수기’였을까. 아니다. 이런 말은 양반네의 것이었다. 무더위 짧은 홑적삼 차림으로 있다가 객이 오면 의관을 정제하고, 음식을 마련해야 하니 귀찮을 밖에. 그래서 양반들에게 여름은 ‘어정(쩡) 7월’이고 날이 선선해져도 ‘건들 8월(이상 음력)’일 수밖에 없다.

농업을 주로 하던 우리 조상들에게 여름은 가장 바쁜 때였다. 잡초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니 매일 김매기를 해줘야 하고, 2모작 작물을 심는 시기이기도 했다.

감자,오이,가지,참외,수박의 수확기였고, 오랜 장마 끝이라 봄에 수확한 곡물을 삼복염천(三伏炎天)의 뙤약볕에 말리는 때였다.


말복은 가을에 수확할 작물이 한참 영그는 시기이기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복날 비가 오면, 청산 보은의 큰 애기가 운다’는 말이 있다. 대추가 영글어가는 시기인데, 대추 팔아 결혼 자금 마련하던 충북 보은 처자들은 8월 비를 원망한다는 뜻이다.

‘말복 나락 크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는 말도 있다. 벼는 초복에 한 살, 중복에 두 살, 말복에 세 살이라고 했다. 그만큼 말복을 전후해 빨리 자란다는 뜻이다. 복날 마다 한 살 더 먹는 벼를 위해 생일 잔치인 복제(伏祭)를 베풀기도 했다고 한다.

지루한 여름 중에, 말복의 의미는 다르다. 12일은 입추 다음으로 오는 첫 경일(庚日), 말복이다. 민속학자 구미래는 “십간십이지의 십간중 하나인 경(庚)은 가을을 상징하는 ‘금(金)’인데, 금 기운으로 여름의 ‘화(火)’ 기운을 물리치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육당 최남선도 ‘서기제복(暑氣制伏)’ 즉 여름 더운 기운을 제압하는 날로 해석한다. 말복은 극복이다.


실학자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는 농가월령가에서 말복 즈음에 “비가 와도 빨리 개고 바람도 다르다”고 했다. 그는 이어 “눈썹 같은 초승달은 서쪽 하늘에 걸리도다. 거름풀 많이 베어 더미 지어 모아 놓고, 오조(일찍 익는 조) 밭에 허수아비를 세우라”면서 가을 기운이 조금씩 도래할 때임을 노래했다. 모기의 입이 비뚤어지고 무더위가 물러가는 처서(處暑)를 열흘 남짓 앞둔 시점이라, 더위에 지친 몸이 다시 기지개를 켤 만 하다.

말복은 ‘비수기 폐막’의 신호탄이다. 휴가때 충전한 에너지와 복날 보양식에서 얻은 영양분으로 내 민생 내가 돌볼 때다. 믿을 ‘양반’네 어디 있던가. 결실을 향한 실천의지를 다지는 ‘결연한 말복’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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