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던 지난 2009년 한 연예인의 ‘창조적 해명’은 국민에게 ‘실소(失笑)’를 선사했다. 4년이 지난 2013년, 유사 버전이 등장했다.
‘세금은 늘었지만 증세는 아니다’는 ‘창조적 해명’은 ‘박근혜정부 버전’이다. 모호한 ‘창조경제’ 대신 ‘창조증세’만 보인다는 푸념이 월급쟁이 사이에 나돈다.
‘박근혜정부’의 지난해 대선 공약은 ‘증세는 없다’였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4대 중증 질환 100% 국가 보장(14조원), 서민 주거 안정(37조원) 등 5년간 135조원가량이 필요한 복지 공약을 약속했다.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냐”는 질문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는 ▷세출 절약 ▷지하경제 양성화 등 세정 강화 ▷복지행정 개혁 ▷공공부문 개혁 등을 통해 조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랬던 박근혜정부가 꺼낸 첫 세제 개편안은 ‘봉급쟁이 지갑털기’로 요약된다. ‘걷기 쉬운’ 월급쟁이들의 봉급 털기가 ‘증세는 없다던 정부’의 세금 걷는 방법인 셈이다.
정부가 꺼낸 중산층의 기준은 ‘3450만원’이다. 정부는 우리나라 중위 소득(4200만원)의 50~150%를 중산층으로 본다. 50%라면 연소득이 2100만원, 150%로 치면 5300만원가량이다. ‘3450만원’을 정부가 우리나라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을 중산층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난 5일 금융권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가계 부채는 10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늘어난 가계 부채는 곧 각 가정이 매달 지불해야 하는 이자 부담이 늘어남을 의미한다. 돈을 벌더라도 쓸 수 있는 돈(가처분 소득)이 적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보유 자산, 자녀 교육을 일정 기간 이상 담당할 수 있는 수준 등은 중산층 고려 대상이 아니다. 각 가정에 주던 ‘세제 혜택’이 줄면 가계 상황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9일 “세목을 신설하거나 세율을 인상하지 않았으니 증세가 아니다”고 했고 “아무래도 봉급생활자들은 다른 분보다 여건이 낫지 않냐”, “부탁하고 읍소드린다”고도 했다. 조 수석의 ‘읍소’를 ‘유리지갑’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정부의 세제 개편안에는 의사ㆍ변호사 등 탈루액이 많은 고소득층에 대한 대책이 빠져 있다.
중산층 복원 역시 박근혜정부의 대선 공약이다. 최후의 보루로 노후 대비를 하겠다면서 매월 한푼 두푼 불입하는 연금저축과 보장성 보험도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세금폭탄을 맞게 됐다. 대상자는 연소득 1200만원부터다. 봉급생활자들은 “중산층에 대한 지원 대책은 없고, 사다리를 걷어치우고 있다”고 반발하는 이유다.
박 대통령이 세법 개정안에 대한 논란 사흘 만에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배경에는 중산층의 강력한 반발과 박탈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번 세제 개편을 ‘중산층 세금폭탄’으로 규정하고, 세금폭탄 저지 특위를 구성해 대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하는 등 대여 투쟁의 지렛대로 삼으려 하고 있다. 전병헌 원내대표도 “중산층ㆍ서민의 등골을 빼는 ‘등골브레이커형’ 세금폭탄이자 봉급자를 봉으로 보는 ‘봉봉세’는 누구의 발상인지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는다”고 비판했다.
특히 야당과 국정원 국정조사를 둘러싸고 대척점에 있는 박 대통령이 우물쭈물하다가는 장외 투쟁의 판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위기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주말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3만명(주최 측 추산)이 모이는 등 전국적인 촛불집회가 열리는 등 여론이 심상찮다는 보고가 속속 올라간 것으로 알려졌다.
홍석희ㆍ이정아 기자/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