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백웅기 기자] ‘당황하셨어요?’
요즘 한 코미디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유행어다. 지난 16일 국정원 선거개입 댓글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 석상에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출석했다. 그런데 증인선서를 거부했다. 잔뜩 벼르고 있던 민주당 의원들은 예상 외의 선서 거부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대한 법률 제3조 1항은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우 선서 및 증언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검찰 기소가 이뤄진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다. 민주당은 “위증을 작심한 것”이라고 비난했지만, 정말 법이 그런 걸 몰랐을까?
민주당도 모양새가 우습게 됐지만, 새누리당이라고 나을 건 별로 없었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질문은 대부분 선서 거부한 증인을 변호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마치 변호인단이라도 꾸린 모양새였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이 국조에 별 뜻이 없어서 장외투쟁을 하고 있다는데, 현장을 보니 그럴 법도 했다.
이쯤되니 국정조사는 보여주기식 ‘쇼(show)’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는 사법권이 없어 국회 권한 밖의 사항에 대한 조사를 강제할 수 없다. 증인의 기본권, 프리이버시도 지켜야 한다. 국회 국정조사 부활 이후 21차례나 실시됐지만 여야합의로 보고서가 채택된 것은 삼풍백화점 붕괴, IMF 구제금융, 이라크 고(故) 김선일씨 사건 등 정치색 없는 몇몇 사안에 불과하다.
이미 검찰이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해 수사하고 기소까지 한 상태다. 야당이 주장한 선거법 위반도 포함됐다. 판단은 사법부로 넘어갔다. 새로운 알맹이도 나오지 않는 국정조사로 진흙탕 싸움할 틈이 있으면, 국정원 개혁방안을 진지하게 토론하는 편이 나아 보인다. 이견 좁히자고 토론하는 것 아닌가.
3권 분립의 또다른 뜻은, 과거에 대한 판단은 사법부, 현재에 대한 대응은 행정부, 미래에 대한 준비는 국회의 몫이란 데 있다. 국회가 과거에만 갇히면 국민들의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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