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이 ‘고립무원’에 빠졌다. 지난해 야권연대 상대였던 민주당은 ‘이석기 사태는 끝났다’는 선언을 꺼내놨다. 거리에 나선 ‘촛불집회’ 시민단체들도 통진당을 배제하는 분위기다. 통진당 내부에서조차 ‘국민의 시각에서 봐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석기 사태’를 기점으로 당이 또다른 ‘내홍’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9일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최고위 회의에서 “이석기 사건이라는 태풍이 한차례 거세게 불고 지나갔다. 태풍이 많은 것을 흐트려 놓고 지나갔다”고 말했다. 통진당과의 선긋기 차원을 넘어 ‘이석기 사안 종료’를 선언과 함께 통진당과의 완전한 결별로 해석된다. 그는 전날 “이정희 대표가 (이석기 의원) 변호인으로 참여하는 것이 진보당의 입장이라면 같이 가기 힘들다”고 말한 바 있다.
김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우리가 지금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인지, 우리가 맞서고 있는 세력과 우리 근본이 어떻게 다른 지 되새기고 다시 우리 각오와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며 “우리는 지금 무너진 민주주의를 뿌리 깊은 반민주 세력을 상대로 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 대표는 체크 무늬 셔츠를 입고 회의에 참석했는데 당 관계자는 “복장은 싸움의 기조 변화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이석기 사태’가 불거진 이후 줄곧 통진당과의 ‘선긋기’에 주력해왔다. ‘촛불집회’를 지역에서 개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달 30일 부산, 지난 7일에는 대전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석기 사태’가 지난달 28일 본격화됐으니, 사건 이후 촛불집회는 현재까지 모두 지방에서 치러진 셈이다.
통진당과의 ‘선긋기’ 분위기는 시민단체들 내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지난 주말 촛불집회 개최 상황이다.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는 통진당 측에 참여하지 말아달라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국회의는 통진당 이정희 대표가 연단에 오르는 ‘당 연설’ 순서도 진행 목록에서 뺐다. 가뜩이나 ‘촛불집회’ 자체의 동력이 줄어드는 마당에 통진당과 시국회의가 한두름으로 엮일 경우 여론 악화가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통진당 내부에서도 지도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진당의 인터넷 홈페이지 당원 게시판에는 “종북 이데올로기 확산에 대해 진보당의 무대책 책임이 크다”는 글이 게시됐고, 또다른 인사는 “오늘부로 탈당하겠다”, “국민의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통진당은 당원들이 동요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과거 국정원의 야당탄압 역사를 소개한 동영상을 홈페이지 첫 화면에 게시하고 있으나, 실효성은 미지수다.
홍석희ㆍ이정아 기자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