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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가 ‘승자’, 의원님들 출판기념회… 국민만 빼고
#1. 여의도 소재 모 협회 지하에는 창고가 있다. 주 용도는 책 보관인데, 80% 가량은 가까운 국회에서 사들여 온 것들이다. 대다수는 20권씩 묶여 있다. 노랑 포장 노끈조차 풀어지지 않은 운반 때 모습 그대로다. 창고가 넘칠 땐 직원들에게 ‘방출’ 한다. 매해 7~8월께다. 국정감사(9~10월)를 앞둔 시점, 쏟아질 국회의원님들의 출판기념회를 준비하기 위해 창고를 비우는 것이다. ‘대량매입과 직원방출’은 수년 째 반복되는 일상이다.

#2. 정치인들의 자서전은 인터넷 중고책 시장에 등록조차 되지 못한다. 때가 되면 쏟아지는 차고 넘치는 책들인데다 내용도 ‘고난의 역사’를 다뤘지만 결국엔 ‘본인 자랑’으로 귀결되거나 ‘아름다운 내 가족사’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찾는 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 중고 인터넷 서적 대표는 “정치인들이 쓴 책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판매가 안된다는 게 등록 불가 이유다. 잘 팔리면 왜 안팔겠냐”고 말했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그렇다고 중고 책으로도 팔리지 못하는 ‘가치 제로’의 책들이 해마다 반복돼 찍혀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홑음절 단어 ‘돈’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묻지마’ 합법적인 모금행사다.출판사, 그리고 책을 구매하고 기부금을 내는 조직들도 돈이 된다.

출판사 입장에서 ‘기본 물량’이 탄탄한 판로를 통해 보장된 의원들의 출판은 ‘땅짚고 헤엄치기’ 다. 마케팅비가 필요없는 것은 덤이다. 의원들 입장에선 ‘책을 냈다’는 뿌듯함과 기념회 당일 들어오는 영수증 필요없는 정치자금이 흐뭇하다. 책을 팔아주는 각종 협회나 기관, 기업들도 ‘밑진다’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장이 국감 장에서 ‘욕’을 보는 것을 막거나 또는 완화할 수 있고, 예산 심의에서 따올 수 있는 각종 ‘예산’이 있다는 믿음 덕이다. 모두가 ‘승리’하는 것이 바로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사업이다. 단 이들의 ‘승리’가 결국은 국민들이 낸 ‘세금’위에 존재하는 것이란 점을 제외하면 그렇다.

▲돈되는 상임위?= 올 들어 최고의 흥행 성적을 낸 출판기념회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이군현 새누리당 의원이다. 예결위원장은 350조원(2013년 342조원) 안팎의 돈을 어디에 배분할지를 결정할 최종 위치에 있다. 여야 실세 의원들은 물론 주요 부처 장관과 기관장들이 이 위원장의 출간을 축하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임원들도 눈도장을 찍었다.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거머쥔 핵심 실세의 행사라는건 현장에서도 느껴졌다. 예결위 여야 간사인 김광림 새누리당 의원과 최재천 민주당 의원은 올해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았다.

금융위원회 등을 소관 부처로 둔 정무위원회는 소위 ‘돈되는’ 상임위로 꼽힌다. 우연치않게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과 여야 간사 등 3명은 올해 출판기념회를 모두 열었다. 김정훈 정무위원장은 지난 4일, 박민식 여당 간사는 지난 7월, 김영주 야당 간사는 지난 9일에 각각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특히 박 간사의 출판기념회는 사실상 ‘부산시장 출정식’이라는 의미까지 겹쳐 새누리당 핵심 의원들이 대거 몰렸다는 후문이다. 올해 정무위 국감에선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 통합, 선박금융공사 출범 무산, 금융감독체계 개편안 등 현안들이 즐비하다.

이들 외에도 국회에선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등도 알짜 상임위로 분류된다. 산자위 강창일 위원장은 지난 6월 24일 ‘여의도에서 이어도를 꿈꾸다’를 출판하는 행사를 가졌고 지난 5일에는 교문위원장 민주당 신학용 의원이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외에도 지난 2일에는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 민주당 정호준 의원도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국회 관계자는 “상임위원장의 경우 평균 억대의 이득이 남는다. 이것저것 비용 다 떼고 순 이익 기준이 그정도”라고 말했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출판기념회에서 들어오는 책판매 대금, 후원금 등에 대해선 관련 기록을 제출해야 할 의무나 한도액을 설정해두지 않고 있다. 합법적으로 정치인을 한도 없이 지원할 수 있는 정치자금법의 사각지대가 바로 출판기념회라는 설명이다.

▲ 매해 단골 ‘뭇매’ 원인은? = 출판기념회는 매년 언론들의 집중 감시를 받는다. 그러나 소위 ‘오세훈법’이 통과 된 이후 꽉 막힌 정치자금을 확보키 위해 출판기념회는 ‘필요악’이라 의원들은 생각한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2004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의원 시절 총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통과시킨 ‘오세훈법’이 그 연원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국회의원에 대한 후원금의 모금 한도는 연간 1억5000만원이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을 모금할 수도 있다. 이외에 기업 등이 후원금을 기탁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정당 후원회 활동도 막아뒀다. 개인의 경우 1년에 낼 수 있는 정치 후원금은 2000만원이지만, 한명의 정치인에게는 500만원이 상한이다. 만일 한 의원에게 한번에 30만원을 초과해 후원금을 낼 경우엔 후원자의 개인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 이 법안은 통과 당시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과도한 규제’라는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1억5000만원 후원금 한도를 정해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출판기념회를 연 한 의원은 “미국처럼 후원금 모금액의 한도를 없애되 받은 후원금에 대한 명확한 용처를 공개토록 정치자금법 개정이 필요하다. 매달 1000만원 가량 소요되는 지역사무실 운영비만해도 의원 세비가 모두 소진될 판”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선 과도하게 ‘빡빡한’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5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개최한 ‘정치관계법 개정 토론회’에 참여한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출판기념회 제도가 투명해지려면 동시에 후원금 제도도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돈이 많이 든다’는 정치인들의 말이 ‘엄살’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지역사무실 운영에 1000만원이 든다는 것은 과장이다. 그것 때문에 출판기념회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도 어설프다”고 지적했다.

어찌됐든, 가뜩이나 생산성 제로라는 비판을 받는 국회의원들이 철따라 자신과 출판사 교열보는 사람만 읽어보는 책을 출간해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행태는 비정상이다.

홍석희 기자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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