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우리 사회 ‘갑을(甲乙)문화’가 문제랍니다. 그런데 시장에서의 관계 대다수는 ‘거래관계’입니다. 거래란 양측이 모두 ‘윈윈’할 때에만 성립되죠. 다수의 경우 ‘갑을’ 문제가 지적될 때엔, ‘윈윈’이 아니라 한측이 손해를 보게 될 때 논란이 되고 분쟁이 생기는 것입니다. 피해를 보는 측은 결과적으로 ‘을’이, 이득을 보는 측은 결과적으로 ‘갑’이 되는 것입니다.
논의의 틀을 국회로 옮겨보죠. 국회가 ‘슈퍼 갑(甲)’이 될 때가 바로 국정감사 때 입니다. 평소엔 부르기 힘든 기업인들을 불러 문제가 된 사안을 ‘지적’할 수 있는 기회가 이때입니다. 때로는 국민을 대신해 국민들의 응어리졌던 가슴이 ‘뻥’ 뚫리게 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국회가 ‘슈퍼 갑’이 되기 때문인데, 당하는 ‘을’ 입장에선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때로는 기업 대표급 인사들을 ‘증인’으로 세울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리로 의원들이 ‘후원금’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사장이나 대표를 증인에서 제외’ 해주는 대가로 억대의 후원금을 요청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같은 부분이 아직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후원금을 요청받은 기업들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것에서 아직은 ‘흥분’할 일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각설하고, 지난 10일 있었던 국회 정무위원회에서의 무더기 증인 열외 결정은 의원의 ‘후원금’ 등의 문제와는 별개의 사안으로 봐야할 겁니다. 배가 떨어진 것이 까마귀가 날았기 때문은 아닌 논리와 같은 것이지요.
이날 정무위 전체회의에서는 무려 8명의 대표 또는 사장들이 증인에서 제외되거나 대리 출석이 확정됐습니다. 그 8명은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 여환주 메가박스 대표, 김정주 넥슨 회장, 마스다코우 이찌로우 한국미니스톱 이사, 박봉균 SK에너지 대표,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대표, 박영빈 경남은행 행장, 이석구 스타벅스코리아 대표 등입니다.
이날 정무위 회의에서는 ‘국감에 출석해야 하는 날 다른 비즈니스 일정과 겹친다’거나, ‘해당 사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당사자들의 소명을 충분히 받아들였기 때문에 스스로 증인 신청을 거뒀다는 의원들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정무위에선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 증인으로 채택됐던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을 대신해 백남육 삼성전자 부사장이 증인 명단에 대신 이름을 올렸습니다. 신 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가 철회한 송호창 무소속 의원의 발언을 종합하면 ‘일감몰아주기’는 신 사장의 영역이 아니고, ‘당일 해외출장’ 때문에 출석이 어렵다는 삼성측 얘기를 수용했기 때문인데요, 소위 ‘이 산이 아닌게비여~’ 상황으로 보입니다.
‘해외 출장’은 이번 국감때도 자주 있는 사롄데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국회 증인 채택 논의가 한창이던 10월 3일 보도자료에서 미래사업 발굴을 위해 해외출장을 간다고 홍보했습니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국회 불출석 문제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번엔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나서시느라 아예 증인 명단에서 빠졌네요.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의욕적으로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린다니 언론들에서도 대대적으로 기사화 했습니다.
송 의원은 이날 단독으로 요구한 여환주 메가박스 대표에 대해서도 증인을 철회했는데요. 이유는 증인 채택이 안된 경쟁업체인 CJ CGV, 롯데시네마와의 형평성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송 의원에겐 다른 영화사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해 ‘다함께 출석’하는 방식으로 형평성을 맞추는 방법도 있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기도 하네요.
게임업계에서 ‘지존’으로 통하는 김정주 넥슨(NXC) 회장도 이날 증인 목록에서 제외됐습니다. 김 회장은 엔도어즈 병합 문제로 국감장 출석을 앞두고 있었는데, 김 회장의 증인 채택을 요구한 김기준 의원은 ‘김 회장은 지난 8월부터 12월까지 해외 출장중’이라는 넥슨측 요구가 타당했기 때문에 증인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김 회장은 업계에선 이미 유명한 ‘해외파’인데요, 국감 일정이 없는 평년에도 절반 정도는 해외에서 머무르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김 회장님이 유명하신 ‘해외파’라는 사실을 의원실에서 몰랐던 것이 증인 채택에 실패한 원인이겠지요. 김 회장의 재산이 2조원대에 육박한다는 점과 넥슨측 대관 담당자가 ‘불철주야’ 국회에서 뛴 것과 김 회장이 증인에서 제외된 것과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원래 ‘해외파’시니까요.
15일에 국감장에 출석하라고 통보됐던 박봉균 SK에너지 대표와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대표는, 13~17일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 에너지총회 주요 참석자라는 이유로 제외됐습니다. 각각의 증인을 신청했던 강석훈, 박민식 의원은 “회장들의 일정을 알지 못했다”했습니다. 세계에너지총회 홍보팀에 연락했더니 이 일정은 “이미 지난해 7월 경 보도자료를 배포해 공식적으로 외부에 알렸던 일정”이라고 합니다. 해당 의원들은 ‘국익이 우선’이라는 이유도 증인 변경 사유로 추가했다고 합니다.
이어 이석구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는 문제가 됐던 카드약관을 바로잡겠다는 약속을 이학영 의원실에 했기 때문에 증인에서 제외됐다는데요, 이상한 것은 언제까지 언제까지 약관을 변경하겠다는 약속이 없었다는 점이죠. 증인으로 채택되기 전에 ‘약속’을 하셨다면 보다 깔끔하지 않았을까 아쉬운 생각도 듭니다.
이외에도 이찌로우 한국미니스톱 이사는 외교문제로 비화될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박영빈 경남은행 행장은 해당 사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일주일 만에 증인에서 제외됐습니다.
dsun@heraldcorp.com
<증인(요구 의원) 변경 (대리인) 국감일정 사유>
신종균 삼성전자 대표(송호창) 증인 급 ↓ 15일 신종균은 해외총괄. 일감몰아주기와 무관.
여환주 메가박스 대표(송호창) 증인 철회 15일 타 영화 유통업계 증인 불채택. 형평성 문제 탓 수정
김정주 넥슨 회장(김기준) 증인 급 ↓ 17일 해외출장
이찌로우 한국미니스톱 이사(김기준) 증인 급 ↓ 17일 외교문제 비화 지적 수용
박봉균 SK에너지 대표(강석훈) 증인 급 ↓ 15일 대구 세계에너지총회 참석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대표(박민식) 증인 급 ↓ 15일 대구 세계에너지총회 참석
박영빈 경남은행 행장(안덕수) 증인 급 ↓ 18일 담당자 채택 오류
이석구 스타벅스 대표(이학영) 증인 철회 15일 의원실 요구 수용키로